본문 바로가기
임실의 문화관광/국가.도 지정 문화재

전북민속자료 제12호 이웅재고가 [李雄宰古家]

by 임실사랑 2013. 6. 18.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에 있는 옛 가옥.

지정번호   전북민속자료 제12호
지정연도   1977년 12월 31일
소재지   전북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456-1
시대   조선시대
크기   안채 정면 5칸 측면 1칸, 사랑채 정면 3칸 측면 1칸, 대문채 5칸
면적   대지 44×41.2m
분류   가옥

 ㆍ연 혁

이 집은 현 소유자의 16대 선조이며, 마을의 향조이기도 한 춘성전(1490년생)이 지은 것이라고 전하나 건물 자체는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대지는 거의 장방형(44×41.2cm)을 이루고 있으며, 북에서 남으로 비탈져 있어서 군데군데에 축대를 동남향으로 앉았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동서 양측에 날기를 달아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 집에서는 큰방의 동측에 머리방 대신 도장을 설치하고 도장 남측에 마루를 두고 이어서 머리방을 두었다.

서측 날개에도 색방을 따로 두고 있어서 상부는 공루이고 하부는 아궁이를 둔 공간을 배치하였다. 큰방 서측에는 찬방을 두어 부엌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안채 전면에는 ㄷ자형의 안 행랑채가 날개를 벌려 안채를 감싸고 있다. 이는 방아실, 안변소, 안광, 책방 등으로 구성되었다.

안 행랑채 동측에 일자형으로 선 사랑채의 지붕은 맛배지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각각 2칸씩의 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상량문에 의하면 1864년에 세워졌다. 출입문은 중앙부 한곳에만 두고 좌우에는 채광을 위한 창을 달았을 뿐이다. 대문채는 5칸 규모이며 중앙부에 소슬대문을 두었다.

여기에는 「有明朝 孝子贈 通政大夫 吏曹參議 李文胄之閭」라고 쓰여진 정문 현판이 걸려있다. 이 현판은 1870년에 내려진 것으로 문간채도 이 무렵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대문의 한쪽 남측에는 바깥변소가 별도로 세워졌으며 전면 우측에는 하마석이 있다.

-----------------------------------------------------------------------------

1977년 12월 31일 전라북도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현 소유자 이웅재의 16대 선조이자 마을의 향조인 춘성정이 지었고, 여러 번 중수하였다.

대지는 44×41.2m로 거의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북에서 남으로 비탈져 있어서 군데군데 축대를 쌓고 건물을 세웠다. 주 건물은 남동향으로 앉았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동서 양측에 날개를 달아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큰방의 동쪽에 머릿방 대신 도장을 설치하고, 도장 남쪽에 마루를 두고 이어서 머릿방을 두었다. 서쪽 날개에도 샛방을 따로 두고 이어서 상부는 공루이고, 하부에는 아궁이를 둔 공간을 배치하였다. 큰방 서쪽에는 찬방을 두어 부엌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안채 전면에는 안행랑채가 날개를 벌려 안채를 감싸고 있으며, 방아실, 안변소, 안광, 책방 등으로 구성되었다. 안행랑채 동쪽에 일자형으로 선 사랑채의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각각 2칸씩의 방과 마루로 구성되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상량문에 따르면 1864년(고종 원년)에 건립되었다. 출입문은 중앙부 한 곳에만 두고 좌우에는 채광을 위한 창을 달았을 뿐이다. 대문채는 5칸 규모이며, 중앙부에 솟을대문을 두었다.

대문채에는 ‘유명조선효자증통정대부사조참의이부위지려(
)’라고 적힌 정문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은 1870년(고종 7)에 내려진 것으로서 문간채도 이 무렵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대문의 한쪽 남쪽에는 바깥 변소가 별도로 세워졌으며, 전면 좌우측에는 하마석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