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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문화관광/국가.도 지정 문화재

전북민속자료 제1호 의견비 [義犬碑]

by 임실사랑 2013. 6. 18.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獒樹面) 오수리(獒樹里)에 세워진 의견비.

지정번호   전북민속자료 제1호
지정연도   1972년 12월 2일
소재지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322
시대   고려시대
분류   민속자료

 연 혁

오수의 지명이 전해주듯 이곳은 충심있는 개의 이야기로 유명하고 이 이야기는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이다. 본래 오수 의견비 이야기는 구전으로 내려와 심병국씨가 유래를 찾았다. 언론인 백남혁씨가 고려 악부의 견문곡과 보한비의 의견비에서 나타난 이야기가 바로 오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으로 알아내고 가람 이병기 박사로부터 고증을 받음으로써 이 마을 이「보은(報恩)의 개」마을이었음이 밝혀졌다. 지금도 오수리 시장내 원동산 공원에는 의견비가 서있어 주인을 위해 죽어간 개의 충절을 위로하고 있다. 지금부터 1천년전 고려시대 거령현, 오늘날의 지사면 영천리에 김개인(金蓋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개를 몹시 사랑하였으며 어디를 다닐 때면 항상 데리고 다녔다. 먹을때도 같이 먹고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면서 생활하였고 그 개 역시 그를 충성으로 따랐다.

그러던 어느해 이른봄 그는 개를 데리고 장이 선 오수로 놀러 나갔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술을 좋아하여 친구들과 한잔두잔 기울이다가 그만 날이 저물어 버렸다. 그는 몹시 취한 채 집으로 가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여 그만 잔디밭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개는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기만 기다리며 쪼그리고 않아 주위를 살피면서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부근에서 들불이 일어나 부근에 번지고 있었다. 개는 주인을 입으로 물고 밀면서 깨우려고 온갖 지혜를 다 짜냈다. 그러나 술에 골아 떨어진 주인은 주위의 불길도 아랑곳없이 깨어날 줄 모르고 있었다. 뜨거운 불길이 점점 주인의 옆에까지 번져오자 개는 불을 끌 수 없음을 깨닫고 가까운 냇물로 쏜살같이 달려가 온몸에 물을 흠뻑 묻혀와 잔디를 적시기 시작했다. 수십수백번을 이렇게 왔다갔다하여 잔디는 물에 젖고 싸늘함을 느낀 주인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힘이 쑥 빠진 개는 주인의 옆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본 후 사건의 전말을 알게된 김개인은 ,몸을 바쳐 자기를 구해준 개를 부여안고 크게 원통해 하였다. 주인은 개를 장사지낸 뒤 이곳을 잊지 않기 위해 개의 무덤 앞에 평소 자기가 지니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얼마후 지팡이에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하늘을 찌를 듯한 느티나무가 됐고 그 때부터 그 나무를 오수라 하였고 그것이 이 고장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그 개의 충성심을 길이 기리기 위해 건립했던 의견비는 문자마저 마멸돼버려 1955년에 다시 세웠고 이 뜻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 면의 명칭도 둔남면에서 오수면으로 1992년 8월 10일 바뀌게 되었다. 1994년 4월 3일 춘향도로 국도변에 김개인과 의견상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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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2월 2일 전라북도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오수리 마을에 세워진 개무덤과 비석이다. 오수리 의구전설()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여러 문헌에 실려 있는데, 고려시대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천 년 전 김개인(
)이란 사람이 장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몹시 취하여 집에 돌아가던 중 잔디밭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때 인근에서 불이나 김개인에게 불길이 번지자 개는 냇가에 가서 몸을 적시어 주인 주위의 풀에 물기를 배게 하여 근방의 불길은 잡았으나 개는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김개인이 깨어나 이 사실을 알고 노래를 지어 슬픔을 달래고 무덤을 만들어 장사지낸 뒤 이곳을 잊지 않기 위하여 무덤 앞에 지팡이를 꽂아 두었다. 얼마 후 지팡이에 싹이 돋기 시작하여 하늘을 찌를 듯한 큰 느티나무가 되었다. 그 때부터 이 나무를 오수라고 했으며, 마을 이름도 오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후에 동네사람들이 주인을 살린 개의 충성심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의견비를 세웠으나 오랜 세월의 풍파로 글씨가 마멸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의 의견비는 1955년 4월 8일에 세운 것으로 비각을 세우고 주위를 단장하여 원동산 공원을 만들고 일주문까지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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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시장 옆의 원동산 공원에 있는 의견비(義犬碑)와 동상으로, 주인을 구하고 목숨을 바친 개의 충성과 의리를 기리고 있다.

“오수(獒樹)”라는 지방이름은 “은혜갚은 개”라는 뜻으로, 이곳 전설 과 관련이 있다. 옛날 통일신라시대 때 지사면 영천리에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개를 매우 사랑하여 어딜 가든지 데리고 다녔다. 어느날 그는 술에 취해 집에 가는 도중 그만 길에서 잠이 들었다. 얼마 후 그 곳에 산불이 나서 그 불길이 주인 근처까지 오게 되자 급해진 개가 주인을 깨우려 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개는 할 수 없이 냇가에 들어가 온몸에 물을 묻혀 주인이 자는 주변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수백 번 반복하여 겨우 불길은 잡았으나 지친 개는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나중에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모든 상황을 짐작하고 개의 충성심에 감탄하여 무덤을 만들어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꽂아 두었다.

그것이 나무로 살아나 자라나 이 나무를 “오수”라 이름 붙이고, 마을 이름도 오수라 불렀다. 후에 동네 사람들이 개의 충성을 대대로 알리기 위해 의견비를 세웠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현재의 것은 1955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믿음과 의리가 사라져 가는 오늘날에 깊은 감동을 주는 귀중한 민속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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