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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문화관광/국가.도 지정 문화재

지방기념물 91호 이석용생가 [李錫庸生家]

by 임실사랑 2013. 6. 18.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峰里)에 있는 고가.

지정번호   전북기념물 제91호
지정연도   1997년 7월 18일
소장   이명근
소재지   전북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676
시대   조선시대
크기   정면 3칸, 측면 1칸
면적   512㎡
분류   생가(지)

 연 혁

이석용 생가는19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석용이 고종15년(1878)에 이 가옥에서 태어나 1903년까지 이 곳에서 거주하다가 임실군 성수면 태평리로 이전하여 생활하였다고 한다.
이석용은 1907년 9월 12일에 진안의 마이산에서 호남의병장의 동맹단을 결성하고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36세의 나이로 1914년 4월 4일 대구 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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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18일 전라북도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었다. 한말 독립운동을 하던 의병장 이석용(李錫庸)이 태어나면서부터 성수면 태평리로 이전하기 전인 1903년경까지 거주하던 곳으로, 187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로, 자연석으로 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다. 1칸 규모의 방 2개에 오른쪽 끝에 부엌이 딸려 있는 구조이다. 삼봉리 마을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현재 비어 있으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부재가 썩고 건물 한쪽이 무너져 있다.

이석용은 1907년 9월 12일 진안의 마이산에서 호남의병장 동맹단을 결성하여 항일운동에 힘쓰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4년 4월 4일 37세의 나이로 대구 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이명근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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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며 의병장이었던 이석용 선생의 생가이다.

이석용은 고종 15년(1878) 이 집에서 태어나 1903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는 임실군 성수면 태평리로 옮겨 의병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87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세웠으며 마루는 건축 당시에는 없던 것을 후대에 덧대어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안쪽에 자리잡은 이석용생가는 현재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 않아 방치된 상태이다. 관리가 되지 않다보니 부재가 썩어 건물의 한쪽이 무너져 붕괴의 위험이 있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방 3개에 부엌이 딸린 개량형 일식기와의 우진각 지붕의 살림집이다. 자연석주초에 원형기둥을 사용하였으며, 마루는 건축당시에는 없거나 토마루이었던 것이 후에 덧대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87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석용생가는 구한말에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항일투쟁을 했던 이석용 의병장이 1878년 11월 29일에 출생하여 1903년경까지 본가에서 거주하다 이후 임실군 성수면 태평리로 이전하여 생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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