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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문화관광/국가.도 지정 문화재

전북문화재자료 제26호 임실향교 대성전

by 임실사랑 2013. 6. 18.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에 있는 임실향교의 대성전.

지정번호   전북문화재자료 제26호
지정연도   1984년 4월 1일
소재지   전북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 812
시대   조선시대
크기   대성전 정면 3칸 측면 4칸, 명륜당 정면 4칸 측면 3칸, 서재 정면 4칸 측면 2칸, 동재 정면 5칸
분류   향교

연 혁

임실읍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임실∼순창 국도로부터 서쪽으로 약 300m가량 떨어진 향교부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용요산의 동남쪽 기슭인 봉황대와 3.1동산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다. 이 향교의 창건 연대와 창건 당시의 위치는 알 수가 없으나 현위치에 이건된 것은 태종 13년(1413)이라고 한다.

이후의 연혁도 고찰할만한 문헌적 자료가 없으며 확인할수 있는 것은 주로 조선말 고종 이후의 것 뿐이다. 철종 5년(1854)에 김성근 현감에 의하여 대성전이 크게 중수되고 고종 15년(1878)에 다시 교궁이 수리되고 고종 20년(1883) 한기석 현감에 의해서 서재가 크게 수리되었고 고종 22년(1885)에 다시 동재가 중수되었다.

향교에 보관되어 있는 중수기에 의하면 이후 임실향교는 고종 31년(1894), 광무 11년(1887), 1916년, 1919년, 1928년, 1935년, 1941년등 수차에 걸쳐 다시 중수되었다. 근래에 이르러서 1988년 대성전을 보수하고, 명륜당 마루공사, 번와 등을 실시하였고, 1986년 서재와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현재 향교에는 맨 뒤로부터 정면 3칸(11.20m), 측면 4칸(7.2m)의 맛배지부의 대성전(24.5평)과 정면 3탄(6.70m), 측면 1칸(2.40m)의 고루집 형식의 내삼문(4.,9평)이 있고, 그 앞에 정면 3칸(11.40m), 측면 3칸(5.90m)이 맛배지붕 형식의 명륜당(20.4평)이 있다. 명륜당을 사이에 두고 그 앞으로 정면 4칸(10.0m), 측면 1칸(6.20m)과 맞배 지붕형식의 동재(10.8평), 정면 5칸 (14.8m), 측면 2칸 (6.0m)의 맞배지붕의 서재(25.4평)가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으며, 이 앞에 정면 3칸(6.2m), 측면 1칸(2.60m)의 맛배지붕의 형식인 외삼문(4.9평)이 있다.

그리고 명륜당과 좌측의 협문을 사이에 두고 정면 4칸(11.6m), 측면 2칸(6,0m)의 우진각 형식의 한옥인관리인 집(24평)이 있다. 한편 외삼문 밖에는 근래에 만든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그 왼편에는 문묘중수사적비, 임실향교주수사적비, 임실향교 모성계사적비 등 3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대성전으로 올라가는 등재와 명륜당의 사이에는 둘레 4m, 수고25m, 수령 700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1982년 9월 20일 도나무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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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임실향교의 원래 자리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태종 13년(1413) 지금 있는 자리에 옮겨 지은 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으며,출입구로 내삼문·외삼문·홍살문 등이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앞면 3칸·옆면 4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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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현재의 위치에 옮겨 지어졌다고 기록되었으나,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건물은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단(明倫堂),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으며, 대성전과 명륜당 사이에는 내삼문이, 입구쪽에는 외삼문이 있고, 외삼문 전면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전에는 이외에 헌관방(獻官房), 제기고, 주고, 행랑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철거되었다. 매년 춘추로 석전제를 지내고 이와는 별도로 매월 삭월과 망일마다 분향례(焚香 禮)를 지내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좌우 양 합각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건물은 낮은 석축의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전면 중앙에는 상부는 띄살문, 하부는 판문형식으로 된 분합문을 달았으며, 좌우 양측에도 같은 형식의 외여닫이를 달았다.

내부의 가구형식은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세우고, 이에 다시 중보를 얹어서 사다리꼴의 대공을 받치고 있다. 명륜당을 비롯한 동재, 서재 등의 건물도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서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퇴집으로 방 3칸, 대청 한칸을 배치하였으며, 동재는 정면 5칸 건물로 방3칸, 대청 2칸의 전면에 퇴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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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창건 연대와 당시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현 위치에 이건된 것은 1413년(태종 13)이다. 임실과 순창간의 국도로부터 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향교부락에 있다. 이곳은 용요산의 남동쪽 기슭인 봉황대와 3·1동산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다. 매년 춘추로 석전을 지내고, 이와는 별도로 매월 삭월과 망일마다 분향례()를 지내고 있다.

임실향교는 1854년(철종 5) 대성전이 크게 중수되고, 1878년(고종 15) 교궁이 수리되는 등 수차에 걸쳐 중수되었다. 근래에 1986년 서재와 명륜당을, 1988년 대성전과 명륜당의 마루와 기와를 보수하였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좌우 양 합각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건물은 낮은 석축의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전면 중앙의 상부는 띄살문, 하부는 판문형식으로 된 분합문을 달았으며, 좌우 양측에도 같은 형식의 외여닫이를 달았다.

대성전의 가구(
)는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세우고, 이에 다시 중보를 얹어서 사다리꼴의 대공을 받치고 있다. 이외 명륜당을 비롯한 동재·서재 등의 건물도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서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툇집으로 방 3칸, 대청 한 칸을 배치하였으며 동재는 정면 5칸 건물로 방 3칸, 대청 2칸의 전면에 퇴를 놓았다.
외삼문 밖의 홍살문은 근래에 지었는데, 왼편에는 문묘 중수 사적비·임실향교 중수 사적비·임실향교 모성계 사적비 등 3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대성전으로 올라가는 동재와 명륜당 사이에는 둘레 4m, 높이 25m, 수령 700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1982년 9월 20일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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