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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문화관광/국가.도 지정 문화재

전북문화재자료 제21호 주암서원 [舟巖書院]

by 임실사랑 2013. 6. 18.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방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

지정번호 전북문화재자료 제21호
지정연도 1984년 4월 1일
소재지 전북 임실군 지사면 방계리 713-1
시대 조선시대
크기 사당 정면 3칸 측면 2칸, 강당 정면 4칸 측면 3칸
분류 서원

주암서원은 인조 8년(1630년)에 창건되었으며, 광무 원년(1897년)에 철폐되었다.
그후 융희 원년(1907년)에 중건하고, 연촌공 최덕지(煙村 崔德之), 암계공 최연손(岩溪 崔連孫), 율계공 장급(栗溪 張及), 사촌공 장경세(沙村 張經世) 등을 배향하였다.
제사 지내는 장소인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공부하는 강당 역시 팔작지붕으로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이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연촌공 최덕지는 전주최씨 문성공계 중랑장공파 연촌공파의 파조로 휘는 덕지(德之)이고 자는 우수(迂 ) 또는 가구(可久)이며 호는 연촌(烟村) 또는 존양당(存養堂)이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연촌공은 1384년에 4세 월당공 최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40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옥당 대각을 거쳐서 여러 지방의 지방관을 지냈다.
특히 경상도 청도 군수로 계실 때 지방 백성들이 무거운 세금에 허덕이는 현실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세금을 덜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주제로 하여 올리신 상소문 "논공담험변부소"는 그 의미와 철학이 깊어 후세의 학자나 관리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었다.
남원 부사를 마지막으로 벼슬을 버리고 전라도 영암 영보촌으로 내려가 서재를 지어 이름을 존양루(存養樓)라 부르고 호를 "연촌"에서 "존양당"으로 바꾸었으며 책과 글을 벗삼아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암계공 최연손은 전주최씨 문성공계 중랑장공파, 연촌공파 7세 선무랑공의 둘째아들로 휘는 연손(連孫)이고 자는 자윤(子胤) 호는 암계(巖溪)이다.
암계공의 태어나고 돌아가신 기록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기록이 둘째아들 감찰공 최엄조(崔淹祖)가  경남 함양에서 살 큰 불(火災)로 모두 불타 없어지고 말았으나 1450년에서 1460년 경에 태어나신 것으로 짐작된다.
1480년 2월 24일 생원시를 장원으로 이어서 같은 해에 진사시도 합격 했으며 1489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1492년 예문관 봉교, 1493년 사간원 정언, 이조좌랑, 1507년 봉상시 정, 1509년 사제감 정, 1527년 2월 3일에는 통훈대부 홍문관 교리 형조참의를 지냈다.
1537년 5월 12일에는 통정대부 승정원 도승지, 가선대부 이조참판, 등을 그리고 전라도 균전어사, 함양군수, 강릉부사, 평양서윤등 많은 관직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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