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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문화관광/국가.도 지정 문화재

전북문화재자료 제20호 영천서원 [寧川書院]

by 임실사랑 2013. 6. 18.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

 

지정번호   전북문화재자료 제20호
지정연도   1984년 4월 1일
소장   안재연
소재지   전북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 203
시대   조선시대
분류   서원
1619년(광해군 11년)에 창건되고 1686년(숙종 12년) 임금이 친필로 현판을 하사해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승격된 서원중 최고의 서원이다. 당시 남원부 48방중의 지사방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서원은 48방내의 30여 서원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이었으므로 권위가 높아 우수한 학자들이 멀리서까지 몰려 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른 일반서원과 같이 1868년(고종 5년)에 헐었다가 해방후 후손들이 재건한 것이다. 헐기전의 건물로는 사우 3칸, 신문 1칸, 동서협문 각 1칸, 전사고 1칸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우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강당 및 3문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서원은 중종때 기묘사화에 희생된 사제당 안처순을 주벽으로 하여 정환, 유헌, 정황, 활계 이대빙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우의 지붕은 맛배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중앙에는 상부가 교착형식으로 사분 합문을 달았는데 좌우측에는 같은 형식의 두짝 열개의 복합문이 있다. 공포는 기둥위에만 배치되었으며 공포와 공포사이에는 화반 한 개씩을 놓았다. 강당의 지붕은 맛배지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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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20호로 지정되었다.

1619년(광해군 1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기묘사화(
) 때 희생된 4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1686년(숙종 12)에 임금이 친필로 ‘영천()’이라는 현판을 하사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어 선현배향 및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당시 남원부 48방 중의 지사방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서원은 48방 내의 30여 서원 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권위가 높아 우수한 학자들이 멀리에서 몰려왔다고 한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광복 후에 후손들이 복원한 것이다.

서원 안에는 안처순(
)을 주벽으로 하여 정환(), 정황, 이대유 등이 배향되어 있다. 훼철되기 전에는 사우() 3칸, 신문 1칸, 동서협문 각 1칸, 전사고 1칸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우와 강당 및 3문만이 남아 있다. 4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는 맞배지붕에 겹처마 건물이다.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중앙에는 상부가 교창() 형식으로 된 사분합문을 달았는데, 좌우측에는 같은 형식의 2짝 10개의 분합문이 있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되었으며,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화반 1개씩을 놓았다.

원내 각종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는 강당은 맞배지붕, 홑처마이고,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가구(
) 형식은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놓고, 종보를 올린 다음 종마루를 받치는 사다리꼴의 대공을 얹었다. 매년 2월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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