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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문화관광/국가.도 지정 문화재

지방기념물 100호 성미산성 [城嵋山城]

by 임실사랑 2013. 6. 18.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덕촌리에 있는 산성(山城).

지정번호   전북기념물 제100호
지정연도   1999년 4월 23일
소재지   전북 임실군 관촌면 덕촌리 산15
시대   삼국시대
크기   둘레 약 518m
분류   성지(성곽)

 연 혁

임실 성미산성은 신라와 백제가 대립하고 있던 6~7세기에 걸쳐 소백산맥을 국경으로 하는 주 저항선과 진안.임실.남원을 잇는 후의 전라좌도 연변을 따라 제2의 방어선 성격을 띠고 있으며, 백제 본기 무왕 605년 2월에 각산성을 축성하였다고 하며, 신라 본기에는 태종무열왕 661년에 두량이성과 정읍 태인에서 백제군에 패한 후 2000여급을 배었다는 기록이 있음.

성미산(430m)의 정상을 안고 남쪽 사면(斜面)을 축성한 좁은 정삼각형으로 둘레가 517.5m나 된다. 이처럼 성미산성을 중심으로 대리산성(신령면 대리),방현리산성(관촌면 방현리) 이 좁은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달리 유래가 없는 것으로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현장인 것이다. 임실 성미산성 안에서는 승석문 토기편등이 출토되었으며, 우물터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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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3일 전라북도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되었다. 조기홍 외 3명이 소유·관리한다. 《삼국사기》〈백제 본기〉에 무왕() 6년(605) 2월에 축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미산(430m)을 중심으로 좁은 정삼각형 형태로 축성하였으며, 둘레는 약 518m이다.

신라와 백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6~7세기에 소백산맥을 경계로 하는 주 저항선에 대해 진안·임실·남원을 잇는 제2방어선 성격을 가진다. 〈신라 본기〉에는 이곳에서 태종무열왕(
) 8년(661) 두량이성과 정읍 태인에서 백제군 2,000명의 목을 베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성미산성 주위에는 대리산성(신령면 대리), 방현리산성(관촌면 방현리)이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6~7세기에 걸쳐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임을 알 수 있고,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장소이다. 우물터가 발견되었으며, 토기 파편들도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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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실 성미산성은 1965년에 전영래박사에 의해 조사되었다. 사선대로 뻗어내린 높이 433m의 [배뫼산]이니 배뫼는 [뿔뫼] 곧 角山 인 셈이다.(성미란 성이 있는 산을 말한다고 본다.

나주 자미산성(=성산산성)과 정읍시 옹동면 산성산성이 다 같은 이름이다)성미산 정박이에 서면한 세모꼴의 산성이 완연히 남아 있다. 각산성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무왕 6년 3월에 각산성을 쌓았는데, 8월에는 신라가 동쪽 변방에 침입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이 산성은 백제시대의 갈령도인 고부- 태인- 임실- 진안- 장수-거창- 고령을 잇는 선상에 위치한다.

이는 현 소백산맥(?) 육십령고개를 넘는 횡단코스이다. 동국여지승람 정읍. 산천조에 의하면 노령산맥을 [葦嶺]이라고도 적고 혹은 [蘆嶺]으로도 적는다 했는데 모두 [갈. 재]의 새김글자를 빌린 것이다. 이에 반하여[葛嶺]의 갈은 소리 글자를 적은 것이다.

태인천을 넘어온 신라군은 이 갈재의 등줄기를 넘어 섬진강 상류인 오원천 곧 운암천을 따라 진안방면으로 물러가다가 각산전투를 만났다. 이때 백제의 군사 2천이 희생되었다. 이곧은 지금의 임실군 관촌면 오원천 양켠 기슭에 뿔처럼 솟아있는 요새지의 성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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