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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임실/임실군 자료[스크랩]

[스크랩] 강끝에서 만난 국사봉

by 임실사랑 2010. 4. 10.

[만경강 이야기 땅과 생명...그리고 江]

긴 여정 마친 느긋한 물줄기...새 생명으로 되살아나다

작성 : 2006-01-31 오후 5:51:01 / 수정 : 2006-01-31 오후 5:51:00

전북일보(desk@jjan.kr)

국사봉에서 바라본 심포항, 국사봉에서 바라본 서해, 김제 망해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국사봉(위부터).

강은 종점을 지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만경강은 국사봉을 지나면서 마침표를 찍는다. 그 생명의 미래가 환희로운 것이라면 국사봉에서 보이는 바다에 대한 허전함을 크지 않으리라.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러할 뿐, 만경창파 흘러가는 강은 예견되는 속박에도 무심한 듯 불평 없이 흐른다. 설레는 미래거나 아니거나, 지금 만경강은 국사봉을 뒤로하는 순간 새로운 이름, 새로운 꿈으로 거듭난다. 서해다.

완주군 동상면 원등산 밤샘에서 발원한 만경강은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이르러 더 이상 강 뭍을 얹고 길을 가지 않는다. 바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의 끝을 명확히 규정하기는 힘들다. 인간의 눈으로 바다를 볼 수 없는 강의 하류에서도 강물은 이미 바닷물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백구제수문 앞까지 바닷물이 들고, 김제 청하에서 보면 강물과 바닷물이 서로 밀고 당기는 것이 분명하다.

뭍과 갯벌, 민물과 바닷물이 공존하는 강의 하구. 점점 넓어지고 느려지는 그곳은 강이기도 하고, 바다이기도 하다. 아니, 강도 바다도 아닐런지 모른다.

하천의 종점은 대통령령으로 정해 건설교통부에서 고시한다. 만경강의 종점은 건설교통부에서 고시한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국사봉 산정에서 북15도 서로 그은 직선'이다.

그 곳, 만경강 종점의 기준인 국사봉에 올라 보면 그 아래 진봉 들녘과 심포 들녘은 더 넓어 보인다. 고사리 앞 만경강 하구를 매립하여 만든 진봉과 심포의 간척지구는 1924년 진봉방조제의 준공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국사봉에서 만경강 북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옥구와 대야 역시 만경강 하류 하안간석지 제방 축조를 통해 간척된 땅이다.

이처럼 만경강이 강으로서의 임무를 다해가는 지점은 역사와 함께 변해 왔다. 흘러오면서 받아들인 지천들과 강의 풍취를 함께 하고자 만들어진 정자들, 강에 붙어 개간된 경작지, 더 풍요로운 경작을 위해 세워진 제수문과 배수문들, 강의 힘을 빌어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만든 산성들, 그러나 이것으로는 지켜내지 못해 겪었던 식민과 수탈의 역사.

서해로 깊이 빨려 들어가는 만경강 끝에서 이들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은 간척지로 가시적이지만, 정작 시간과 사람살이가 용해된 강의 운명은 가시적이지 않아 무한한 만큼 안타깝다.

그 운명은 강이 마르지 않은 한은 지속될 것이어서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고 담수호가 만들어지면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넓고 깊게 흐르는 내'로 정의된 강이 바다로 귀의하기 전, 잠시 호수의 모습으로 흐름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바다의 밀고 써는 힘과 더불어 밀리고 나아가던 강은 배수갑문 앞에서 더욱 불어나기를 기다리다 사람들이 철문을 올려줄 때에서야 바다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운 나쁜 강물은 평생 바다로 가지 못한 채 증발해 버릴 수도 있을 터. 만경강은 그 임무를 수행할 거리가 늘어난다. 그렇다면 그 때에는 만경강의 종점을 어디라 부를 것인가.

어디 만경강뿐이랴. 강과 바다 사이에서 둘을 공유하던 갯벌도 육지가 된다. 심포리 끄트머리, 바다와 대면하고 있는 거전마을은, 마을 앞 갯벌이 넓은 밭과도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 그대로 넓은 땅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은주(만경강생태하천가꾸기 민관학협의회 사무차장)

국사봉은 왜구 침범 막아낸 요충지

건설교통부 하천법에 의하면, 국가하천 및 지방 1급하천의 명칭과 구간은 대통령령에 의한다. 이에 근거해 만경강은 그 시점이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고산천 합수점'이며 종점은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국사봉 산정에서 북 15도 서(西)로 이은 직선'이다.

그러나 '국사봉'이라 불리는 봉우리는 전국에 산재해 있다. 전북에도 지리산, 고창, 임실, 순창, 무주, 진안 등에 각각 국사봉이라는 봉우리가 있고, 김제만 해도 모악산 기슭과 심포 부근 등 두 곳에 달한다.

보통 이 명칭들은 '영험한 기운'이라거나 '군주와 신하의 형상' 등에서 유래된다. 대개 200m 이상이고, 1000m를 넘는 국사봉도 있지만, 만경강 종점의 기준인 김제 진봉면의 국사봉은 해발 61m의 나지막하고 평범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그 아래 마을 사람들은 그저 앞산·뒷산이라 하며 살았고, 양지바른 동네 어귀 언덕들이 그렇듯 국사봉 역시 이름 모를 무덤들이 발치부터 정상까지 촘촘하다.

봉우리에 나라 국(國)자를 쓰는 데는 그만한 근거가 있을 터. 진봉의 국사봉도 '국'자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가 있었다. 그 시기는 고려 말로 추정된다. 국사봉 서쪽에 전선포가 있는데 본래 해군기지와 같은 군항(軍港)으로 고려 말 왜구와 접전을 벌였던 곳이라 한다. 전선포 앞에 봉수대가 있어 정박한 전선들과 수시로 연락을 가질 수 있는 곳이었고, 만경강 입구로서 전라도를 적군으로부터 지켜내는 요새였다.

이 요새를 감싸고 있는 것이 국사봉이다. 지금은 전선포 제방에 의해 일부는 농경지가 되고 일부는 해안이 되어 전선이 정박했던 포구의 흔적은 없다. 그러나 이제 국사봉은 만경강 종점의 기준으로서 다시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받는다.

출처 : 초록지기
글쓴이 : 이정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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