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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임실/임실군 자료[스크랩]

[스크랩]섬진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임실

by 임실사랑 2010. 4. 10.

따뜻한 부부의 마음을 담은 방풍림, 선녀들의 놀이터 사선대

우리 땅에서 가장 맑고 깨끗하면서, 한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섬진강! 전북 진안 백운면의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500리의 긴 여정을 시작하는 섬진강 물줄기가 제대로 된 강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곳이 바로 섬진강 상류인 임실이다. 제대로 강의 형태를 이룬다는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의 강길을 따라 걸으면 최근에 건설교통부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방동마을의 숲길을 만난다.
300년 전 이 마을에 사는 한 부부가 홍수를 방지하고 농사를 짓기 위한 수리시설용으로 하천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어 조성한 풍치림을 간직한 이곳은 지난해 여름 70년만의 대홍수로 이 일대의 농경지와 가옥이 침수되는 곤혹을 치뤘지만 이 숲이 헌신적으로 막아내어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울창한 숲 속 향기를 마시며 몇 킬로미터 강둑을 따라가면 국민관광지라고 이름이 붙은 사선대를 만난다. 덕천리의 강가에 위치한 사선대 관광지는 임실 최고의 국민관광지답게 체육공원 시설과 조각공원, 인조잔디 축구장과 청소년수련원 등 각종 문화시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사선대라는 이름은 이곳의 경치에 반해 마이산의 두 신선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하늘의 네 선녀가 보고 반해 내려와 함께 놀았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이곳의 절벽과 섬진강변의 경치는 장관을 이룬다. 또한 사선대 위 절벽에는 일제강점기 하에서도 임실군민의 손으로 건립한 전북 유형문화재 135호인 ‘운서정’이 있다. 그 당시에는 우국지사들이 모여 나라의 앞날에 관하여 논하기도 하였다는 이곳은, 지금은 사선대 관광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등산로이며 산책 코스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소주에 치즈를 안주로
관촌에서 임실 읍내 가는 전주-남원간 국도를 따라가다가 임실 읍내 초입에 들어서면 국내 최초의 치즈 생산지인 임실치즈농협을 만난다. 벨기에 출신인 지정한 신부의 열정으로 탄생한 한국 최초의 치즈, 그리고 신부님을 따라 치즈를 만든 사람들에 의해 최근 임실이 치즈로 유명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 관계자를 상대로 성공사례 발표하는 등 지역의 혁신우수사례로 평가되어 많은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임실은 그간 단 한번도 전국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치즈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주민들이 반긴다. 바로 옆 지역에 순창고추장이라는 특산물과 임실의 치즈는 좋은 대비를 이루면서 공존하고 있다. 고추장은 전국 어디서나 만들 수 있지만 치즈는 임실 하나뿐이다. 근처의 만두집에서는 치즈만두를 팔고, 추석 때는 치즈로 송편을 만들고, 한편 시장에서는 할아버지들이 모짜렐라치즈에 신김치를 얹어 소주를 먹는 곳이 바로 이곳 임실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은 비록 더디고 힘들지만 끝까지 가면 새로운 길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한국을 위해 희생한 외국인들은 많았지만 임실의 지정한 신부처럼 구체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도움을 준 분의 역사는 그리 흔하지 않다. 조만간 최초의 치즈 생산지를 복원하여 기념관을 만들고 지정한 신부를 기념하는 많은 공간들을 만들어 명실공이 임실을 치즈의 메카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쓸쓸해 보이지만, 도도하게 아름다운 강가의 석등

강물을 따라 걸어, 신평면에 들어서면 과거에 일반 농가에서 사용해 오던 재래식 농기구와 각종 생활용품을 수집해 전시한 ‘주민생활박물관’이 발길을 잡는다. 이 박물관에는 조선 시대 말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재래식 농업 관련 기구를 비롯하여 가정에서 사용해 왔던 생활용품 등 200여점이 제공자의 명패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이곳은 강가에서 농사를 짓고 강을 부모 삼아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을 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생활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을 뒤로 하고 강가를 따라가다 신평보라는 작은 댐을 지나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용암리를 만난다. 용암리의 낮은 산 언덕아래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강가의 사찰터에 ‘용암리 석등’이라는 거대한 역사구조물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이 석등은 임실군의 유일한 국가 보물(276호)이며,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높이가 5.18m에 이른다. 절대적인 크기로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다음이라고 하지만, 화엄사를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빌자면, “용암리 석등은 상륜부의 마지막 부분이 소실되었으므로 한국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이 석등은 웬만한 시골집 지붕보다 더 높아 마을이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도 보인다. 상륜부가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큰 덩치가 결코 어색하지 않으며 안정적이고 화려하면서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것이 문화재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염원하는 석등에 불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서 2006년 5월 5일 마을주민은 물론 임실과 섬진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제1회 산상음악회를 열었다. 광명등의 성스러운 의미를 되새기며 섬진강의 넉넉한 마음을 대표하는 정신문화유산을 만들자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모은 것이다. 그 때 모였던 섬진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바람대로 그간의 발굴된 자료를 토대로 허름한 가건물에 모셔놓은 부처님을 제대로 모시고, 주변 정리를 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생긴 보물 석등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산속의 호수 옥정호와 국사봉

협곡을 거치며 정신없이 흘러드는 강물을 가둬놓은 옥정호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호수! 월면리는 이 끝자락에 있다. “흐르는 물줄기를 가둬버렸으니 불만의 물결이 여기저기서 철썩일만도 한데 어찌 그리 고요한 걸까?” 그야말로 산 속의 호수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나 보다.
다시 월면리를 나와서 선거리를 지나면 옥정호 순환도로에 접어든다. 이 도로는 국내의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 순위에 들어 있는 길이다. 옥정호는 노령산맥 줄기 사이 임실군 운암면 일대를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 물을 옥정리에서 댐을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시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셔주는 한편,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다목적 댐인 인공호수이다. 또한 빼어난 경관을 벗 삼아 낚시를 즐길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한때는 전국 강태공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지만, 상수원보호지구로 지정되면서부터는 국사봉에서 바라보는 옥정호의 풍경사진을 낚는 사진 마니아들의 발길이 장사진을 이루는 곳이 되었다.
국사봉을 지나면 옥정호를 가로지르는 운암대교를 가기 전에 오스하우스라 이름이 붙은 아주 독특한 건축물을 하나 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교도소 같다고도 하는 아주 독특한 갤러리이다. 콘크리트 건축물인데 누드 공법을 이용하여 더욱 더 독특해 보이고, 내부는 예술작품 같이 꾸며놓아 강과는 아주 잘 어울린다. 우리가 흔히들 강과 현대적인 건축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강을 보고 할 수 있는 생각들을 다 옮겨 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강가의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즉 이곳 오스하우스는 상업시설임에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서 아주 가치 있는 임실군 또 하나의 자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전통의 필봉농악

국사 봉에서 내려와 운암대교를 지나 나즈막한 산자락을 몇 군데 지나 걷다보면 강진읍내 가기 전 왼쪽으로 필봉농악전수관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필봉농악은 설명이 필요하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 호남좌도 필봉농악은 전북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 전승되어온 호남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풍물굿이다. 특히 필봉마을은 호남의 동부 지역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예로부터 외부와의 교류가 원활하지 못한 지역적 특징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마을굿 형태를 가장 잘 보존되고 있다. 필봉마을굿의 역사는 300년 정도 추정하며 1대 상쇠 박학삼, 2대상쇠 송주호 3대 상쇠 양순용에 이르러 꽃을 피우게 된다. 가락적 구성은 호허굿가락, 채굿가락, 영산굿, 도둑잽이굿, 수박치기, 싸잽이굿 등으로 앞굿 중심이 강한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서 필봉 굿은 뒷굿 중심 또는 놀이 중심에 치중한다. 전문가적인 용어와 굿의 형태를 넉넉히 알지 못하지만, 임실 필봉농악은 쇠가락(농악의 대표격인 꽹과리 가락)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가락이 힘차고 씩씩하며, 개개인의 기교보다 단체의 화합과 단결을 중시한다. 또한 전국에서 필봉 굿을 배우기 위해 연 3000여명이 찾아와 필봉 굿을 전수받고 있다. 물론, 이렇게 문화유산을 알리고 보존할 수 있었던 데는 사십대 초반의 젊은 필봉굿보존회장 양진성 씨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즉 작은 지역의 문화유산이 살아서 움직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이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이다.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개발

국내 문학 창작의 요람지로 알려진 섬진강 상류인 덕치면의 진뫼마을 천담마을, 구담마을 일대가 섬진강 지류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김용택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진뫼마을 앞강에는 마을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놓은 징검다리가 있고, 오래도록 마을을 지키는 정자나무가 시인의 마음을 닮아가며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진뫼마을은 마을의 모든 집에서 강까지는 몇 걸음 되지 않는 전형적인 강마을이다. 시인은 이곳에서 주변의 산과 들, 나무와 풀, 강물과 논밭을 노래해왔다. 김용택 시인이 ‘서럽도록 아름답다’고 했던, 시인의 단어를 만들어낸 서정(抒情)의 강변이 바로 이곳이다. 검은 암반 위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 낮게 드리운 집들, 모든 풍경들이 한편의 시가 되기도 했다.
진뫼마을에서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맑은 물과 산등성이로 병풍을 친 듯한 천담마을 앞에는 진뫼마을 김도수 님의 ‘어머니 사랑비’가 있다 부모님이 땀 흘리던 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사랑비’를 하나 세워, 그 비의 뒷면에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씀을 이렇게 적어 놨다.
“어머니 아버지 가난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섬진강은 따뜻한 사람들이 찾고 그리워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흐른다.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10리 정도의 비포장길이 있다. 김용택 시인이 천담 분교 재직 시절, “눈곱만큼도 지루하지 않고 순간순간, 계절 계절이 즐거웠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는 바로 그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은 섬진강 500리길 중 유일하게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다. 군도로 계획돼 군이 포장을 하려고 했지만 시인과 마을사람들이 반대해 지금처럼 흙길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길은 일명 ‘시인의 길’로 통하고 있다. ‘그대로 두는 것’ 언젠가는 ‘본래대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포장하지 않은 아름다움의 순수를 지켜주는 것이 진정한 개발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섬진강의 또 다른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흙길을 따라가면 천담마을 밑에 구담마을을 만난다. 천담마을과 그 아래 구담마을은 때 타지 않은 수더분한 맛이 있는 마을이다. 구담마을의 느티나무 언덕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서 아이들이 창희의 가묘를 만들어주던 곳이다. 현재 유홍준 문화재청장 ‘섬진강은 말로 전하는 강이 아니라 바라보는 강’이라고 한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섬진강의 시작 임실’은 이렇게 느티마을에서 끝을 보이게 된다. 바로 섬진강 500리의 상류가 끝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섬진강은 전북 순창으로 넘어가면서 임실군에서 내려오는 오수천을 만나 중류의 새로운 중후한 공간을 만든다. 산속에서 나온 강은 이제 제법 큰 들과 그리고 많은 산들이 쏟아내는 물을 받아 그곳 사람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가며 또 다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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