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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가나의 성채 ( Forts and Castles of Ghana : 문화, 1979 )

by 임실사랑 2006. 9. 2.

가나(GHANA)

001. 가나의 성채 ( Forts and Castles of Ghana : 문화, 1979 )  

가나라는 국명의 기원이 된 가나제국(4~13세기)은 오늘날의 말리공화국의 서쪽에 있었다고 하며, 가나의 역사와는 관계가 없다.
유럽인이 내항하기 전의 이 영토 내 각 부족의 역사에 관해서는 확실한 자료가 없다. 금 산지라는 매력에 끌려 15세기 이전에 프랑스인을 비롯한 모험가들이 내항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기록은 1470년 포르투갈인의 내항이 최초이며, 그들은 1481~82년 지금의 케이프코스트 서쪽 엘미나에 성채를 지어 금과 노예 무역을 시작하였다. 그 후 영국·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 등의 선박도 이 해안을 찾아와 성채를 만들었으며, 18세기 중엽에는 약 40개의 성채가 해안에 늘어서 있었다. 가나 지구에서는 그때까지 많은 부족국가가 흥망성쇠를 되풀이하고 있었으나, 성채를 통한 연안무역과 노예무역으로 해안의 열대우림 북쪽에 있었던 부족국가들은 차차 쇠퇴하였다.
17세기 말 아칸족의 아콰무 왕국이 연안무역으로 강력해졌으나, 이어 다른 아칸족의 연합국인 아샨티가 이를 누르고 점차 북쪽의 부족국가들을 정복해 갔다.
18세기 후반에 아샨티 왕국이 연안의 부족들을 정복하기 시작하자, 연안부족들은 영국·네덜란드·덴마크 등에 보호를 요청하였다. 1807년 이후 유럽 각국은 노예무역을 그만두고 다른 무역품을 구하게 되었으나, 그 무렵에는 금의 산출도 감소되어 있었다.
1830~44년 영국의 상인 G.매클린의 노력으로 연안의 판티족 각국은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영국 정부는 50년 덴마크의 성채를 사들였고, 72년 네덜란드도 이 해안에서 철수하였다.
영국은 아샨티 왕국을 무력으로 억압하여, 74년 영국 식민지 ‘골드 코스트(Gold Coast:黃金海岸)’를 확립하였다. 또한 1895~1901년 아샨티 왕국과 북부 부족들도 보호령으로 만들어, 그 전체를 ‘골드 코스트 직할식민지 및 보호령’으로서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1979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베냉만 연안에 있다. 1482년부터 1700년대까지 이곳에 들어온 유럽 항해가들이 60개에 이르는 교역용 성채를 건설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이들 가운데 20여 개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482년에 세운 세인트조지성채·케이프코스트성채·크리스티안보르그성채와 1667년에 세운 구드호프요새·암스테르담요새·산안토니요새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교역 장소를 겸하였기 때문에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서 독특한 건축물군을 이룬다.

유럽의 상인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상품을 이곳에서 황금·상아·향신료 등과 바꾸었다. 황금 매장량이 줄어들자 점차 노예무역이 확대되어 물건 대신 흑인노예를 주로 거래하였는데, 세인트조지성채가 가장 큰 노예교역소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에는 건축물 대부분을 역사박물관·행정부건물·학교·호텔·형무소·등대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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