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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티칼 국립공원 ( Tikal National Park : 복합, 1979 )

by 임실사랑 2007. 6. 18.

과테말라 (GUATEMALA)

005. 티칼 국립공원 ( Tikal National Park : 복합, 1979 )

 

과테말라의 도시유적 국립공원.
소재지 과테말라 북부 페텐 지방
국립공원 지정연도 1955년
면적 16㎢
기후 아열대기후
명물 계단식 피라미드
최적방문시기 1∼4월

 

과테말라 북부 페텐 지방의 밀림 속에 남아 있는 총면적 약 16㎢의 마야 문명 최대·최고(最古)의 도시 유적이다. 1931년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55년 국립공원으로 변경되었다. 1979년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의 세계유산 목록 가운데 신전·국립공원으로 등록되었다. 1990년에는 페텐 지방 총면적의 약 40%에 이르는 면적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티칼국립공원 안에는 3,000개나 되는 크고 작은 건축물들이 밀림의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땅 위로 솟아 있다. Ⅰ에서 Ⅴ까지의 신전과 남쪽 광장, 중앙 광장, 7개의 신전의 광장. '잃어버린 세계의 피라미드' 지대, 비명()의 신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눈을 끄는 것은 정글의 마천루를 연상시키는 마야 특유의 모양을 한 계단식 피라미드의 신전들이다.  

 

지금 남아 있는 최대의 신전은 Ⅳ호 신전으로 높이가 72m이고, 상부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벽의 두께는 12m에 이르며, 관광객이 오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정글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다. 이들 신전이나 아치로 만들어진 궁전·석비 등의 사이를 잇는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마야 문명의 도시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이 지역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600년부터라고 하며, 그 이후 단속적으로 거주지가 형성되어 왔다. 서기 5세기에는 테우아칸(멕시코의 도시유적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테우아칸의 것과 같은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고, 같은 방식의 매장법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3개의 신전은 테우아칸의 건축법과 같은 방식으로 건조되어 있으며, 테우아칸 병사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석비도 남아 있다.

 

주민들에 의해 복원된 것으로 보이는 신전도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신전의 50%는 마야문명사의 고전기() 전기인 서기 250∼600년에 다른 곳에 건조되어 있던 것을 당시의 주민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신전 도시도 10세기에 다른 마야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버려졌는데, 약 4만 명에 이르던 주민들이 이 도시를 버리고 떠난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마야 문명을 아는 데 필수적인 것들로, 공원 안에 있는 유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일대의 기후는 온화하고 습기가 많은 아열대기후이다. 연평균기온은 24℃, 연강수량은 2,000㎜이고, 우기는 5월에서부터 12월까지 계속되며, 평균 150일 동안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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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의 북부 뻬뗀 주의 정글에 묻혀 있는 띠깔은 마야 최대?최고의 유적으로, 20~30m로 자란 나무 사이를 헤치고 높게 솟아 있는 신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야의 위대함과 신비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띠깔은 기원전 수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300~800년에는 뻬뗀 일대의 마야 도시를 거느리는 대신전으로서 번영하였다. 인구는 적을 때에도 1만 명은 넘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재의 황폐한 주변을 살펴보며 굉장한 대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500년경에는 일시적으로 멕시코의 떼오띠와깐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나 떼오띠와깐이 쇠퇴해 버린 8세기에 띠깔은 오히려 가장 찬란한 시기를 맞아 지금 남아 있는 대신전도 모두 이 시기에 건조되었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수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띠깔은 도시가 번성함에 따라 영토나 건물을 점점 늘려갔으며 현재 알 수 있는 것만도 약 16km의 공간에 3,0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건조물이 있다.

영화를 누렸던 띠깔도 1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돌연히 붕괴되고 주민은 전부 사라져 버려 최대의 옛 도시도 정글 속에 버려지는 운명을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묻혀진 도시가 다시 발견된 것은 1696년이 일이다. 스페인의 선교사 아벤다뇨와 그 일행이 따야살(지금의 플로레스)의 이싸족(族)에게서 도망쳐 나왔을 때 우연히 밀림 속에서 이 오래된 유적을 발견했다. 근래에 들어와 미국의 펜실베니아 대학을 중심으로 발굴 조사가 진행되면서 5개의 대신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피라미드나 궁전 등 수많은 건축군이 복원되고 있다. 그리고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띠깔 외에도 광대한 뻬뗀 주의 정글 속에는 아직도 여러 개의 마야 도시가 묻혀 있다고 한다.

띠깔 유적 관광은 우선 띠깔에서 약 60km 떨어진 뻬뗀 이싸 호에 있는 플로레스 시를 목표로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란 쁠라사 Gran Plaza

그란 쁠라사란 ‘커다란 광장’이라는 의미다. 이름 그대로 띠깔 유적의 중심부인 광장으로 관광객들은 이 곳에서 출발하게 된다. 광장이 동서에는 거대한 1, 2호 신전, 북쪽에는 노스 아그로뽈로스의 건물, 남쪽에는 센뜨랄 아끄로뽈리스의 건물군이 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 같은 곳이다. 땅 밑에는 과거 4회에 걸쳐 건설 공사를 한 흔적이 있는데 최초의 것은 기원전 150년경, 최후의 것은 700년경의 것이다. 유적은 광대하므로 여유있게 둘러보도록 하자.

?1호 신전 Templo 1

광장에서의 높이는 51m로 띠깔의 5개 신전 중 네 번째의 높이다. 그러나 복원된 건물의 아름다움을 두고 말하면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첫째다. 주변에 우거진 수십미터나 되는 열대수목보다 더욱 높이 솟아 있는 신전의 자태는 그야말로 정글의 마천루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건조 시기는 700년 전후이며 상부의 신전부 입구에서 거대한 재규어의 조각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재규어의 신전’이라 불린다. 띠깔은 멕시코 떼오띠와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이 1호 신전은 떼오띠와깐이 급격히 쇠퇴하고 띠깔이 독자적인 힘을 되찾았던 시대에 건조된 것이다. 건물은 순수한 마야 양식이며 수세기 전부터 띠깔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던 수직적 경향을 충분히 도입한 띠깔 건축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9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의 대좌에는 수평면의 돌출부가 전체에 리듬감을 주며 조금씩 좁아지면서 상부로 올라간다. 위의 신전부로 가는 위험한 계단은 수평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9개의 층을 세로로 관통하여 피라미드 전체에 강렬한 악센트를 주고 있다. 신전에는 3개의 방이 있으며, 방의 천장에서는 역 V자형의 전형적인 마야 아치를 볼 수 있다. 신전의 위에는 수많은 부조의 흔적이 있는 거대한 장식 지붕이 올려져 있다. 그 화려한 자태는 마치 장중한 피라미드 전체를 하늘로 떠올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1958년에 피라미드 내부의 더 오래된 피라미드에서 대분실(大墳室)이 발견되었다. 왕의 것으로 생각되는 유골의 주위에는 200개가 넘는 비취의 장식품, 음식물을 넣었으리라고 생각되는 20여 개의 토기, 먼 해안에서 운반해 온 조개껍질이나 가오리의 꼬리 등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들이 있었다. 이 곳에서 발견된 부장품은 띠깔의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2호 신전 Templo 2

그란 쁠라사를 사이에 두고 1호 신전과 마주보는 신전이다. 건조 시기는 1호 신전과 마찬가지로 700년 경인 것으로 생각된다. 장식 지붕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의 부조물 때문에 ‘가면의 신전’이라 불린다. 높이 38m로 5개의 신전 중에서는 가장 낮다. 그러나 3층으로 이루어진 묵직한 대좌로 돌아가면 풍부한 부조 장식이 있는 높고 경쾌한 장식 지붕으로 이어진다. 그 훌륭한 균형 감각은 띠깔 예술의 극치라 할 수 있다.


?3호 신전 Templo 3

2호 신전의 동쪽(뒤쪽)에 있다. 높이는 55m, 건축 시기는 띠깔 24호 비석에 의하면 810년이다. 상부 신전의 들보에서 볼 수 있는 조각에 의해 ‘재규어 신관의 신전’이라 불린다. 이 정교한 조각은 신전 정면, 즉 정동쪽을 향하고 있으므로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났음에 틀림없다. 계단이 복원되어 있지 않아서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발자국을 따라 반듯이 위의 신전 입구까지 가 보자.


?4호 신전 Templo 4

그란 뿔라사에서 서쪽으로 똑바로 가면 서쪽 끝에 솟아 있다. 신전의 신성문자(神聖文字)의 기록에 의하면 건축 시기는 741년이다. 지면에서 장식 지붕의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70m다. 이것은 떼오띠와깐의 태양의 신전을 능가하는 것이며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태양의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있었던 신전이 남아 있다면 높이는 75m가 되어 이것이 가장 높은 것이 된다.) 거대한 장식 지붕을 지탱하는 신전 벽의 두께는 놀랍게도 12cm나 된다. 동쪽에 면한 계단은 흙과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사용할 수 없지만 피라미드 북쪽(정면을 향하여 좌측)의 흙과 돌과 덩굴 식물로 된 자연 계단을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작은 방이 있는 신전부의 북쪽에는 더욱 위로 올라가는 쇠로 된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어서 장식 지붕 바로 아래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 곳에서 내려다보는 띠깔의 전경은 무척 인상적이다. 정글의 지평선이 곡선을 그리며 펼쳐져 있다. 뻬뗀의 정글에 이러한 대도시를 건설한 마야의 힘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5호 신전 Templo 5

사우스 아끄로뽈리스의 바로 동쪽에는 높이 57m로 띠깔에서 두 번째로 높은 5호 신전이 있다. 피라미드는 정글의 덩굴식물이나 관목으로 뒤덮여 있어서 정상에 장식 지붕이 튀어나와 있지 않다면 모르고 지나쳐 버릴 정도다. 건축 시기는 700년경, 이렇게 규모가 큰데도 불구하고 상부의 신전에는 75m 폭의 방이 겨우 하나 있을 뿐이다. 신전 뒤의 벽은 장식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두께가 5m나 된다. 이 피라미드에서 내려다보는 띠깔의 조망은 훌륭하다. 발자국을 더듬어서 올라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주의해야 한다.


?사우스 아끄로뽈리스 Acropolis del Sur

수많은 신전을 지탱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플랫폼이 중첩되어 있는 것으로 높이가 약 25m다. 상부는 넓고 평평하지만 복원되지 않아서 올라가기는 어렵다.


?센뜨랄 아끄로뽈리스 Acropolis del Central

그란 쁠라사 남쪽 약 210m에 걸쳐서 동서로 펼쳐져 있는 거대한 주거지다. 2~3층의 폭이 넓은 건물군은 다른 띠깔 지배층의 가족이 거주했던 장소일 것이다. 아끄로뽈리스 내에는 6개의 정원이 있으며 그것을 둘러싸듯이 궁전이 늘어서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건조물은 300~600년의 것이지만 하부에 다른 건물이 있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기원전부터 이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음이 확실시되고 있다. 몇 개의 궁전 내부에는 회반죽으로 장식된 벽이 남아 있고 역 V자형의 마야 아치의 천장에서는 목조 들보가 있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아끄로뽈리스 전체는 황량하지만 귀중한 유적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발견해 가도록 하자.


?7개 신전의 광장 Plaza de Siete Templos

사우스 아끄로뽈리스의 서쪽 옆에 있는 띠깔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광장이다. 광장 이름의 유래는 광장의 동쪽에 있는 7개의 작은 건물로, 96호 건축물을 중심으로 좌우에 3개씩 나란히 있다. 이들 7개의 작은 건물들은 고전기 후기의 것인데, 광장 자체의 역사는 기원전 수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광장의 남쪽에는 3개의 궁전이 나란히 늘어서 있으며, 서쪽은 또 하나의 궁전과의 칸막이 구실을 하는 작은 신전에 의해 막혀 있다. 또 광장 북쪽에 나란히 있는 3개의 건물의 세 공간은 그대로 구기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잊혀진 세계 Mundo Perdido

7신전의 광장에서 더욱 서쪽으로 가면 푸른 잔디가 예쁘게 자라고 있는 기분 좋은 공간 ‘잊혀진 세계’가 이어진다. 중앙에는 거의 완전하게 복원된 높이 30m의 정사각뿔형 피라미드가 보이는데, 그 모양을 보면 떼오띠와깐 건축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건축 시기는 600년 전후다.


?비명(碑銘)의 신전 Templo de Inscripciones

1호 신전 뒤에서 멘데스 길을 지나 유적의 동남쪽 끝까지 가면 비명의 신전이 나타난다. 이 신전이 발견된 것은 비교적 오래되지 않았으며(1951년), 현재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상부의 커다란 장식 지붕에 신성문자가 많이 새겨져 있으므로 비명의 신전이라 불리게 되었다. 비문의 기록은 766년으로 되어 있다. 이 피라미드의 크기는 1~5호 신전에 뒤지지 않는 규모이고, 띠깔 제6호 신전으로 복원될 예정이다.


?박쥐의 궁전 Palacio de Murcielago

3호 신전 바로 뒤쪽에 좌우 대칭형인 2층 건물이 있다. 내부에서는 마야 아치의 천장, 벽화의 흔적, 복도의 벤치, 서쪽을 향한 창 등을 볼 수 있다. 마야 후기(600~800년)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꼼쁠레호 Complejo

꼼쁠레호란 마주 보는 건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7세기 초엽 띠깔 초기의 건축 양식이다.마주 서 있는 2개의 작은 피라미드가 어디에 사용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2개의 작은 피라미드는 사방에 계단이 있는 제사용의 플랫폼으로 중간에 모이는 신도들이 제사 의식을 더욱 친밀하게 느낄 수 있도록 건축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4호 신전 앞에 있는 꼼쁠레호 N(711년으로 기록된 16호 비석이 피라미드 앞에 서 있다.), 이 외에도 1호 신전에서 미라의 길을 가는 도중에 있는 꼼쁠레호 Q, R(790년이 기록된 19호 비석, 711년이 기록된 22호 비석이 있다.) 등 현재 7개의 마주 보는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피라미드 앞에는 직사각형의 커다란 석상이 놓여 있으며 기묘한 신과 인간의 조각과 아마도 꼼쁠레호가 건축된 날짜로 생각되는 신성문자가 새겨져 있다.


?노스 아끄로뽈리스 Acropolis del Norte

그란 쁠라사를 내려다보는 북쪽에 광장보다는 몇 미터 높은 석회암 플랫폼 위에 노스 아끄로뽈리스의 건축군이 있다. 발굴을 위하여 상부의 건물(600~900년 고전기 후기의 것)을 제거했기 때문에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300~600년의 고전기 전기의 유적이다. 1,000년 이사에 걸쳐 뻬뗀 지방의 통치 중심지로 군림했으리라고 생각되는 노스 아끄로뽈리스에는 100개가 넘는 건축물이 포개지듯 세워져 있으며 가장 오래 된 것이 기원전 200년경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하에서는 선고전기 마야(기원 이전)의 유적이나 묘실이 발견되었으며 많은 매장품이 띠깔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상부에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신전이 있으며 계단 옆이나 신전 내부에 놓여 있는 거대한 마스크 조각은 흥미롭다. 지하의 석상 앞에는 촛불이 켜져 있지만 어두우므로 라이터나 손전등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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