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고향 임실/임실군 자료[스크랩]

태조 왕건과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찾아간 곳은? 임실 성수산 상이암

by 임실사랑 2010. 1. 3.

상이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자동차가 올라갈수 있을 정도로 넓고 포장도 되어 있지만 등산길이 불과 30여분이면 족한데 그렇게 산사를 찾는 예절도 없이 자동차를 고생시킨다면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좌우로 키가 큰 나무들이 방문객을 맞이하며 시립하고 서 있어 한 여름에도 그늘이 잘 만들어져 천천히 뒷짐을 지고 걸어도 좋을 거리이다.

 

<상이암의 역사>

상이암은 행정구역으로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에 있으며 서기 875년 신라 헌강왕 때 가야선사가 창건했다.

조선 태조 3년(1394년)에 이르러서는 각여선사가 조정의 명을 받고 크게 중수, 인근에서는 가장 웅장한 사찰로 알려졌다.

하지만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병화를 입어 불에 탔고 한일합방 시기인 1909년 10월에서야 김대원 선사가 재건했다.

이후 한국전쟁시에 또다시 전화를 입어 소규모 암자로 명맥을 이었으나 최근에서야 신도와 행정의 도움으로 사찰로서 모습을 갖췄다.

1000년을 훨씬 넘긴 상이암의 역사는 왕건이 초야에 묻혀 살았던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풍수도참가로 유명한 도선은 성수산을 보고 '천자를 맞이할 길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라 탄복하고 왕건을 찾아갔다.

왕건은 도선의 뜻에 따라 계곡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던 중 관음의 계시를 얻어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바위에 글을 새겨 환희담(歡喜潭)이라 불렀다. 이는 상이암 사적 기록에 남겨졌고 이같은 설화는 당나라 문헌인 당일선사기에도 적혀 있다고 전해졌다.

-출처 : 전북일보 참조   http://www.jjan.kr

오랜 역사 속에서 전화로 화재로 수없이 상처를 입은 상이암이지만 최근에 많은 불사를 하여 새롭게 모습을 단장하여 무량수전도 단청을 새로이하고, 요사채도 새로이 만들어져 좁은 절터에 식구들이 많이 늘었다.

 

 

 

상이암은 작은 암자답게 일주문도 없고 암자로 들어오는 길이 두 갈래인데 암자의 정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옆길로 들어왔더니 , 아마 손님들이 오시는지 스님 한 분이 부지런히 입구를 쓸고 계신다.

 

 

상이암 입구 커다란 바위에 수많은 이름들...

아마 벼슬아치들이었을 것이고 먹물깨나 먹었는지 필체들도 그럴싸 하다.

저렇게 글자를 새길려면 돈도 제법 들었을터인데 목민관들이 하는 짓이란 허망한 이름 석자를 이렇게 남겨두고 싶은 간절한 욕망뿐이었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어필각에 있는 삼청동이라는 비석문이 눈에 들어온다.

절 입구 비각은 어필각(御筆閣)으로 부르는 것으로서, 비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이고 풍판을 댄 맞배형식의 목조기와집이다. 자연 기단 위에 원형주초를 놓고 원형기둥을 세운 건물이다. 내외부에는 단청을 칠해 장엄하였다.

어필각의 안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쓴 '삼청동(三淸洞)'을 새긴 비석이 있다. 앞서 창건 부분에서 말한 것처럼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전에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렸으나 별다른 감응이 없자 이곳에서 다시 3일을 더 기도 드리면서 맑은 계곡물에 매일 같이 목욕재계를 했다. 그러자 드디어 관음보살의 계시를 얻게 되었고 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자연석에다 '삼청동'이라고 새겼다고 전한다.

비각 옆에는 1922년에 세운 <조선태조고황제어필삼청동비각중수비>가 있다.

-출처 :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참조   http://www.koreatemple.net

 

 

 

상이암 전경으로 어필각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들이 있고 이 곳에 서면 상이암이 한눈에 보일뿐만 아니라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도시의 묵은 때를 씻어준다.

상이암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꼭 한번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족히 100년은 넘을듯 보이는 커다란 전나무 한그루는 상이암의 상징처럼 우뚝 솟아있다.

"사진작가님, 이 나무를 잘 좀 찍어서 선전 좀 해 주세요."

"글쎄요, 저 같은 문외한이 보아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소나무, 느티나무나 버드나무 등은 보호수로 지정된 것이 많지만 전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된 경우는 한번도 못보았는데, 정말 대단한 상이암의 자랑거리네요."

<상이암부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24호

이 두기의 부도들은 스님들의 사리를 봉안한 것이다.

자연석을 받침으로 사용한 점이나 몸체에 별다른 장식을 가하지 않은 소박한 형태이다.

몸체보다 큰 팔작지붕의 덮개를 올린 부도보다는 종모양의 부도가 훨씬 세련미가 있다.

부도의 몸체에는 스님의 법호를 새겼다.

상이암은 신라 현강왕 1년(875년) 도선스님이 지었으며, 처음의 이름은 도선암이었으나

이성계가 이곳에서 불공을 드릴때, 나중에 왕이 될 것이라는 소리가 들려 상이암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출처 : 해설판에서 발췌

 

 

 

상이암은 성수산자연휴양림을 통해서만 들어가야 한다.

성수산자연휴양림에는 따로이 입장료를 받으므로 상이암을 가거나 성수산 등산만을 하려면 입구에서 미리 방문 목적을 밝히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이곳까지 와서 성수산자연휴양림을 그냥 지나친다면 아쉬움이 크리라 생각든다.

 

임실은 고추의 주산지로 매년 고추아가씨 선발대회도 하는데 섬진강변에서 잡은 다슬기의 맛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대부분 다슬기수제비를 많이 하는데 임실지방에서는 푸르스름한 다슬기의 고유한 빛깔과 맛을 살린 다슬기국이 유명하다.

관촌 기사식당의 다슬기국이 상당히 입소문이 나 있으므로 한번쯤 들려서 시원한 다슬기국 맛을 보며 다른 지방의 다슬기 맛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