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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베트남의 다낭에서 위에까지 Danang to Hue

by 임실사랑 2006. 7. 22.

베트남의 다낭에서 후에까지 Danang to Hue

 

다낭    |  Da Nang

베트남 쾅남다낭주(州)의 주도(州都).

위치 : 베트남 쾅남다낭주
인구 : 38만 3000명(1992)

인구는 38만 3000명(1992)이다. 남중국해에 면한 주요항구로, 구(舊)남베트남의 군사적 요지였다. 프랑스령(領) 시대에는 안남 왕국 내의 프랑스 직할 식민구역으로 투란이라고 하였다. 1965년 3월 베트남 참전의 미국 파견군이 이 항구를 상륙지점으로 하였고, 또 한국의 청룡부대가 주둔하였다. 부근에는 참족(族) 왕국의 유적과 유물을 보존하는 박물관과 함께 많은 예술품이 남아 있다

 

 

후에    |  Hue   順化

베트남 중부에 있는 도시

위치 : 베트남 중부
인구 : 21만 9000명(1992)

 

인구는 21만 9000명(1992)이다. 안남산맥 기슭의 안남평야에 자리잡고 있다. 남중국해 연안에서 8㎞ 정도 떨어져 있으며 얕고 넓은 후에강이 가로질러 흐른다. 강 왼편의 도심부에는 19세기 초 중국식으로 지은 베트남제국의 왕궁 다이노이가 있는데 후에[阮]왕조는 이곳에서 수세기 동안 베트남을 통치했다. 식민지시대에 프랑스인들은 강 오른편에 거주했으며 오늘날 이 도시의 동쪽에는 상업지구가 들어서 있다. 기원전 200년경 남베트[南越]의 중국군사령부가 주둔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200년경에는 참족(族)이 지배하였다. 그뒤 중국에 정복당하기를 반복하다가 1635년 이후 중부 및 남부 베트남을 지배하던 구엔가(家)의 수도가 되었으며, 1802년 베트남 통일 후 구엔왕조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1883년 프랑스에 점령되었고 1940∼1945년 일본 점령하에 있었으며 1947년 4월에는 비공산계의 베트남 임시 행정위원회가 여기서 조직되기도 하였다. 1949년 7월 1일 새로 수립된 베트남공화국이 수도를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으로 정하면서 예로부터 중심지 역할을 하던 이곳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1946∼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초기에 피해를 입었고 1963년과 1965년 심각한 내란에 휘말렸으며, 베트남전쟁 때인 1968년에는 베트공의 공습으로 심한 피해를 당했다. 이때 많은 옛 왕족의 건물과 박물관·도서관·불교사원 등이 파괴되어 그후 재건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호찌민시와 하노이를 연결하는 철도·도로변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종교·문화·상업의 중심지로, 정미·제재·섬유·시멘트 공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후에대학·후에제국행정대학이 있고 응우옌왕조의 무덤들이 부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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