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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임실/임실군 자료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9권 전라도(全羅道) 임실현(任實縣)

by 임실사랑 2020. 7. 20.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9 전라도(全羅道) 임실현(任實縣)

 

동으로 남원부(南原府) 경계까지 21, 남으로 남원부 경계까지 23, 서쪽으로 순창군(淳昌郡) 경계까지 57, 태인현(泰仁縣) 경계까지 65, 북으로 전주부(全州府) 경계까지 24, 진안현(鎭安縣) 경계까지 25, 서울로부터는 582리이다.

건치연혁 본래는 백제의 임실군(任實郡)이다. 신라 때는 이에 따랐고, 고려 때는 남원부(南原府)에 속하였다가 고려 명종(明宗)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본조에서는 태종(太宗) 13년에 준례에 따라 현감(縣監)을 삼았다.

관원 현감(縣監)훈도(訓導1.

군명 운수(雲水).

성씨 본현 ()()()()()(). 구고(九臯) ()()()()(). 취인(醉人) ().

형승 여러 산이 줄지어 있고, 물 한 줄기 빙 돌아 흐른다 정인지(鄭麟趾)의 시. 봉만만첩(峯巒萬疊정창손(鄭昌孫)의 시에, “사방으로 돌아보매 봉만이 만첩 병풍일세.” 하였다.

산천 용요산(龍繞山일명 사요산(蛇繞山)이라고도 하는데, 현의 북쪽 5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고달산(高達山현의 동북쪽 15리에 있다. 또 진안현(鎭安縣)에 보라. 두만산(斗滿山현의 서쪽 11리에 있다. 회문산(回文山현의 서쪽 50리에 있다. 또 순창군(淳昌郡)에 보라. 영취산(靈鷲山현의 서쪽 30리에 있다. 사현(沙峴구고현(九皐縣)에 있다. 본현(本縣)으로부터는 20리이다. 두만천(斗滿川두만산에서 나와 객관 남쪽을 지나 다시 돌아서 동쪽으로 흘러 오원천(烏原川)으로 흘러 들어간다. 구고천(九臯川사현(沙縣) 남쪽으로 흘러 갈담역(葛覃驛)을 지나서 순창군 적성진(赤城津)의 상류로 들어간다. 오원천(烏原川진안현의 중대산(中臺山)마이산(馬耳山) 등의 물이 오원역(烏原驛)의 동쪽에서 합하여 현의 북쪽 15리를 지나 다시 돌아 서쪽으로 흘러 순창군의 적성진이 된다. 평당원천(坪堂院川현의 남쪽 15리에 있다. 현의 동쪽 대용점(代用岾)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남원(南原) 오수역(獒樹驛)의 남쪽에 이르러 거령천(居寧川)과 합한다.

토산 은어[銀口魚]지치[紫草]생강모시닥종이산무애뱀[白花蛇]지황(地黃)울금(鬱金)석이버섯.

학교 향교(鄕校현의 서쪽 1리에 있다.

역원 갈담역(葛覃驛현의 서쪽 40리에 있다.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석양에 돌아가는 깃발 나무 그늘 가운데 남쪽으로 건너오니, 산천이 모두 한 모양이로세. 늘어진 버들은 사람을 근심하게 하여 가는 곳마다 푸르고, 깊숙한 골짜기의 꽃은 주인이 없는데 누구를 위해 붉었는고. 우정(郵程)은 경유하는 손을 두루 겪었고 야성(野性)은 누가 방달(放達)한 노옹(老翁) 같을까. 분주히 역마 타고 달리는 모양을 하지 않고, 옷을 벗고 한가로이 마루에 가득한 바람에 누웠네.” 하였다.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십 리의 시내와 산이 한 눈 안에 있으니, 유람객의 흥취는 고금이 한가지로세. 서리 맞은 대가 난간을 스쳐 푸르고, 여름 꽃송이는 뜰에 펄럭이며 붉고나. 비단 자리에서 다시 누가 주객(酒客)을 맞아줄 것인가, 사롱(紗籠)에는 스스로 시를 쓴 첨지가 생각나네. 마루에 기대서서 우두커니 돌아갈 것을 잊으니 무성한 나무에 매미소리가 저녁 바람에 들리네.” 하였다. 설장수(偰長壽)의 시에, “지세가 그윽하고 수림은 깊은데, 새 소리 명랑하고 푸른 시내에 봄이 깊어 칡덩굴이 뻗치었네. 우연히 산가(山家)를 향하여 말의 먹이를 구하러 가니 백발 역리(驛吏)의 말 소리 알아들을 수 없구나.” 하였다. 중 선단(選坦)의 시에, “진흙 길을 무릅쓰고 파리한 말로 산성(山城)을 지났네. 차가운 등불 심지를 돋우며 빗소리를 듣도다. 올해가 다 가는데도 객로(客路)는 글칠 줄을 모르니, 명년엔 어느 곳에서 신정(新正)을 맞을 것인가.” 하였다. 오원역(烏原驛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필마로 유유히 갈림길을 지나니, 누런 국화와 붉은 단풍이 사랑스러운 때로다. 가을빛은 괴롭게 나그네의 흥을 일으키니 머리 가득히 흰 머리털이 덮었네.” 하였다. 동우원(東隅院현의 동쪽 5리에 있다. 만세원(萬歲院현의 남쪽 20리에 있다. 구고원(九臯院구고현(九臯縣)에 있다. 중지원(中止院현의 서쪽 60리에 있다. 운암원(雲巖院현의 서쪽 65리에 있다. 신간원(申幹院현의 북쪽 25리에 있다.

불우 백련사(白蓮寺)선압사(仙押寺)원적사(元寂寺모두 영취산(靈鷲山)에 있다.

사묘 사직단(社稷壇현의 서쪽 2리에 있다. 문묘(文廟향교에 있다. 성황사(城隍祠현의 북쪽 5리에 있다. 여단(厲壇현의 북쪽에 있다.

고적 구고폐현(九臯廢縣현의 서쪽 20리에 있다. 본래는 백제의 돌평현(堗坪縣)이었다. ()은 누()로 적은 곳도 있다. 신라 시대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고, 순화군(淳化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남원부(南原府)에 예속되었다가 공민왕(恭愍王) 3년에 현 사람 원사(元使) 임몽고불화(林蒙古不花)가 국가에 공을 세워 군으로 승격되었다. 본조 태조(太祖) 3년에 내속시켰다. 취인부곡(醉仁部曲현의 서쪽 10리에 있다.

신증 효자 본조 박번(朴藩생원(生員)이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아버지가 병으로 오리를 먹고자 하매, 물가에 가서 구하며 가슴을 치고 통곡한바, 홀연 죽은 오리가 물 위에 떠올라 이것을 가져가 먹도록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여묘하였다. 금상(今上) 11년에 정문을 세웠다.

제영 전옹산보방유계(田翁散步傍幽溪김극기(金克己)의 시에, “촌 늙은이 그윽한 시냇가에 산보하는데, 백발에는 쑥대 비녀 손에는 명아주 지팡이로세. 해는 지는데 읊조리니 누가 짝하리, 원숭이의 맑은 소리와 새들의 슬픈 지저귐이로다.” 하였다. 노목황진협고계(老木荒榛夾古溪김약수(金若水)의 시에, “노목과 황량한 개암나무 시내를 끼고 있고, 집집마다 소채와 명아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하네. 산새들은 백성을 근심하는 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수풀 사이에 여유롭게 지저귀도다.” 하였다. 소슬추풍동객정(蕭瑟秋風動客情정인지(鄭麟趾)의 시에, “소슬한 추풍은 객정을 흔드는데, 동헌은 이 날에 더욱 차구나. 오경 외로운 베개에 촌 닭 울음이 들리고 만리 장공에는 변방 기러기 나네. 쉬지 않는 광음은 물처럼 흐르고 유유한 뜻은 시절을 느껴 일어나누나. 슬프구나, 가을 기운 부()를 지을 만하니 부질없이 이소경(離騷經)을 보고 초성(楚聲 초 나라의 노래)을 배우네.” 하였다. 수가리락담연생(數家籬落淡煙生신숙주(申叔舟)의 시에, “말을 타고 유유히 가니 만 리의 정이요. 저녁에 외로운 객관에 드니, 온 집이 맑구나. 뜰 앞에 작약(芍藥)은 붉은 꽃이 시들려는 듯, 담장 밖 멧부리는 푸르게 멀리 연하였네. 10()의 볏모에 흐르는 물이 어둡고 몇 집 되는 마을에는 엷은 연기 일어나네. 객창(客窓)이 적막한데 오직 달빛만이 밝고, 꿈을 깨니 못 개구리 한바탕 노랫소리로구나.” 하였다. 근장수록다교목(近牆嫩綠多喬木성임(成任)의 시에, “높은 마루에서 서성대니 뜻은 유쾌한데 옷깃은 점차로 서늘해 옴을 느끼겠네. 흐르는 물이 금현(琴鉉)처럼 울리는 소리를 듣고 원산(遠山)이 그림의 병풍처럼 비껴있는 것을 보겠네. 봄은 낙화가 나는 곳을 따라 지고, 바람은 가랑비 지나는 데를 좇아 부는구나. 담 가에는 연녹색 교목이 많으니, 아름다운 꾀꼬리의 우는 소리 들리네.” 하였다. 호벽산배달입(戶碧山排闥入정창손(鄭昌孫)의 시에, “태평한 시절 만나 임금의 은혜 입어 남쪽에서 노니 승경(勝景)이 매우 맑구나. 새로 핀 연잎이 비를 머금으니 푸른 돈 [靑錢]같이 축축하고, 노수(老樹)에 바람부니 푸른 일산 비끼었네. 문에 마주한 푸른 산은 문턱을 밀치고 들어오고 뜰에 찬 방초는 섬돌 위에서 돋아나네. 객창(客窓)에서 사향(思鄕)의 꿈에 놀라 깨서 홀로 난간에 의지하여 새 소리를 듣노라.” 하였다.역수의희홍엽난(驛樹依稀紅葉亂서거정(徐居正)의 시에, “가을 바람이 환유(宦遊)하는 사람에게 불어주니, 만리 호남(湖南)에 호수가 맑구나. 역수는 희미하고 단풍잎은 어지럽고 고향은 아득한데 흰구름에 비꼈어라. 흐르는 세월은 나를 뒤로 하고 당당히 지나가고, 흰머리는 사람을 깔보고 자꾸자꾸 생기누가. 홀로 객관 마루에 앉아 잠깐 조는데, 홀연히 모점(茅店)의 한낮 닭 울음이 들리네.” 하였다.신증 벽옥지함허각정(碧玉池涵虛閣靜이숙함(李叔瑊)의 시에, “남쪽 천리길 놀기에 지쳤는데, 짧은 갈옷은 서풍에 서늘한 기운 견디지 못하네. 벽옥같은 못엔 고요히 빈 누각의 그림자만 잠겼는데, 취병(翠屛)같은 산이 반이나 처마에 비껴들었네. 멀리 수림에 흰 기운 일어남은 마을의 연기가 흩어짐이요, 홀로 조그만 난간에 의지하여 아직도 감회가 있는데, 실컷 울던 소쩍새 울음 그쳤다 또 들리네.” 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연혁 고종 32년에 군으로 고쳤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연혁 본래 백제의 잉힐(仍肹)이다.

방면 현내(縣內)대곡(大谷동쪽으로 처음이 5, 끝이 10리이다. 덕치(德峙서남쪽으로 처음이 35리 끝이 60리이다. 상동(上東처음이 7, 끝이 30리이다. 하동(下東처음이 10, 끝이 20리이다.이인(里人남쪽으로 처음이 5, 끝이 20리이다. 옥전(玉田남쪽으로 처음이 10, 끝이 25리이다. 구고(九臯서쪽으로 처음이 20, 끝이 30리이다. 상신덕(上新德서쪽으로 처음이 15, 끝이 35리이다.하신덕(下新德서쪽으로 처음이 30, 끝이 50리이다. 상운(上雲서쪽으로 처음이 20, 끝이 35리이다. 하운(下雲서쪽으로 처음이 30, 끝이 60리이다. 신안(新安서쪽으로 처음이 5, 끝이 15리이다.강진(江津서쪽으로 처음이 30, 끝이 50리이다. 상북(上北처음이 5, 끝이 20리이다. 하북(下北처음이 20, 끝이 40리이다. 신평(新坪북쪽으로 처음이 15, 끝이 30리이다.
취인 부곡(醉人部曲)은 서쪽으로 10리이다.

성지 고성(古城용요산(龍繞山) 위에 있으며, 흙으로 쌓았던 옛터가 있다.

창고 ()과 고()가 둘 읍내에 있다. 서창(西倉서쪽 30리에 있다. 북창(北倉북쪽으로 30리에 있다. 외산창(外山倉북쪽으로 110, 전주(全州) 성봉산성(成鳳山城)에 있다.

역참 갈담역(葛覃驛서남쪽으로 40리에 있다. 오원역(烏原驛북쪽으로 20리에 있다.

교량 오원교(烏原橋)갈담교(葛覃橋)운암(雲巖겨울에는 다리[]를 놓고, 여름에는 외나무다리[]를 놓는다. 광제교(廣濟橋남쪽으로 1리에 있다.

토산 은행모과호두닥종이.

누정 봉황루(鳳凰樓)벽운루(碧雲樓현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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