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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hoto/일반사진

김제 진봉 망해사

by 임실사랑 2013. 4. 23.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본산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만경강 하류 진봉산 기슭에 서해에 접하여 멀리 고군산 열도를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는 망해사는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규모가 초라한 편이다. 

백제 때인 642년(의자왕 2)에 부설거사가 이곳에 와 사찰을 지어 수도한 것이 시초이다.

(현지 안내문 :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부설거사가 처음세웠다고 하는데,.....)

그 뒤 중국 당唐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하였으나,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겼다.

조선시대인 1589년(선조 22) 진묵대사가 망해사 낙서전(전북문화재자료 128)을 세웠고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중수했다.

건물의 오른쪽에는 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서 법당(法堂) 겸 요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진봉산 고개 넘어 깎은 듯이 세워진 기암괴석의 벼랑 위에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며 서 있어 이름 그대로 망해사이다.

묘화妙花, 심월心月 등의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부설거사는 부안 변산반도의 월명암에서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불국사로 출가한 부설거사는

도반 영희靈熙, 영조靈照 스님과 함께 지리산, 천관산, 능가산 등지에서 수행하다가 문수도량을 순례하기 위해 오대산으로 행했습니다.

가던 길에 거사는 지금의 김제 만경의 두릉에서 구무원九無寃이라는 사람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18살되던 구씨의 딸 묘화妙花가 벙어리로 살았는데, 거사의 법문을 듣고 말문이 터졌습니다.

묘화는 함께 살기를 간절히 희망했으나, 거사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묘화를 자살을 기도 했고, 거사는 <중생이 앓고 있으므로 나도 앓는다>라는 유마의 선언을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거사는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 아이를 부인에게 맡기고 수도에 전념했습니다.

속에 처하되 그곳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훗날 옛 도반이 찾아와 도력을 시험했을 때, 대들보에 매달 물병을 깨뜨리고도 물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거사의 것 밖에 없었습니다.

 

후에 거사는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기고 좌탈 하였습니다.  

[ 눈으로 보는 바 없으니 분별할 것이 없고    目無所見無分別

  귀로 듣는 바 없으니 시비 또한 사라지네     耳聽無聲絶是非

  분별 시비는 모두 놓아 버리고                    分別是非都放下

  다만 마음 부처 보고 모두 귀의할지라         但看心佛自歸依    ]             @ 但 : 다만 단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부설거사가 처음 세웠다고 하는데, 그 때의 절은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겨 버렸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선조 22년(1589)에 진묵대사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진묵은 이곳에서 많은 이적을 남겼으며 지금까지 그 일화들이 전해진다.

1933년과 1977년에 두 차례 중수하였다.

팔작지붕의 ‘ㄱ’자형 건물이며 앞으로 마루가 튀어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마루에 범종이 걸려 있었으나 새로 지은 종루로 옮겨졌다.

건물의 오른쪽에 방과 부엌이 있어 법당 겸 요사채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기단은 자연석 기단이었다가 최근에 시멘트로 보수하였고, 초석은 자연석, 각형, 원형이 혼용되었다.

기둥은 자연목을 깎아 세웠고, 공포는 익공식이다.

출처 : 다음블러그 바람꽃과 솔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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