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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임실/임실군 자료

임실군의 지명유래 (국토정보 지리원)

by 임실사랑 2011. 1. 22.

 

 

 

 전라북도

[漢] 全羅北道

[英] Jeollabuk-do


우리나라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이다. 북으로는 금강을 경계로 충청남도와, 동으로는 소백산맥으로 경상도와, 남으로는 노령산맥을 경계로 전라남도와 접한다. 도의 서부 지역은 황해와 접하며 동진강과 만경강이 흘러 바다로 유입한다. 이들 두 하천 유역은 우리나라 제1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를 이룬다. 하천의 하구에는 새만금 방조제가 축조되어 있다. 동쪽의 장수군 수분리(水分里)에서 금강이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면서 유역에 형성된 고을이 무주·진안·장수군이다. 이 일대를 무·진·장 지역 이라고도 일컫는다. 도의 남쪽은 남해로 유입하는 섬진강의 상류에 해당된다. 이 하천은 진안군 백운면과 장수군 장수읍의 경계인 팔공산 (八公山, 1,151m)에서 발원하여 오수천, 요천 등을 합류하면서 전라남도로 흘러 나간다. 한 편 남원군 운봉면 일대를 흐르는 람천은 낙동강 수계에 속한다.

전라북도 지명은 1896년(고종 33) 전국이 13도로 개편되면서 이전의 전라도를 분리하여 남 북도로 나누면서 처음 사용되었다.‘전라도’지명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통일 신라시대의 9주 5소경 체제하에서 전라도 일대는 전주(全州)와 무주(茂朱)에 해당되었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12목제하에서는 전주목·나주목·승주목이 해당되었으며, 10도제 하에서는 강남도(江南道, 현 전라북도 일대)와 해양도(海陽道, 현 전라남도 일대)로 불렀다. 이후 행정구역 의 변경을 거쳐, 현종 때 5도양계제를 실시하면서 이전의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전라도’라 칭하며 처음 사용되었다. 도 지명은 강남도와 해양도의 소속 주(州)였던 전주와 나주의 머릿글 자를 합성하여 만든 것이다. 당시 전라도에 속한 군현은 1목 2부 18군 81개 현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07년(태종 7)에 8도제가 실시되면서 다른 지역은 지명이 대부분 바뀌었으나 전라도와 경상도는 지명을 유지하였다. 당시 행정 편의상 전라도를 좌·우도로 나누어 동부 산악지대는 좌도로, 서쪽의 평야지대는 우도로 일컬었다. 인조 때 전남도(全南道)·광남도(光南道), 1728년(영조4)에 전광도(全光道)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일시적이었다.

1895년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가 실시되면서 행정지명으로서‘전라도’는 없어지게 되었다. 이 제도는 불과 1년 2개월 만에 폐지되고,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이전의 전라도를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나누면서 지명이 생겨났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 해 25개였던 군현은 1부 14군으로 통폐합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1963년 금산군을 충청남도로,구례군을 전라남도로 편입시키는 등 몇 차례의 행정구역 변경을 통해 오늘에 이른다. 현재 6개시 8개 군을 관할 한다.

 

전라북도의 시·군 행정구역

노령산맥 蘆嶺山脈 Noryeongsanmaek  

충청북도 영동에서 전라남도 무안에 이르는 산맥이다. 전체적으로 호남권에 속하는 이 산맥은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지맥으로서 추풍령(秋風嶺)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 진다. 주요 산은 운장산(1,126m), 마이산(680m), 내장산 신선봉(763m), 방장산(734m), 태청산(593m), 불갑산 (516m) 등으로 저산성(低山性) 산지를 이룬다. 이 산맥과 소백산맥의 사이에는 폭 10~20km의 지구상(地溝狀) 고 원이 전개되어 있다. 이곳을 경계로 금강은 북류하고 섬진강이 남류하는데, 진안고원이 양 하천의 분수령을 이룬 다. 산맥의 서쪽에서는 만경강과 동진강이 발원하며 넓은 호남평야가 전개된다. 남부는 동진강과 영산강의 분수계를 이룬다.

조선시대 이 산맥의 일부 줄기가『산경표』에는 호남정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 산맥을 지금과 같이 독립된 산줄기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일본인 지질 학자인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연구 논문을 발표한 이후이다. 이후 여러 차례 내용상 수정이 있은 뒤,‘노령 산맥’은 지금의 지리적 범위에 해당하는 산지를 지칭하 는 지명이 되었다.

노령(蘆嶺)은 전라북도 정읍 입암면과 전라남도 장성 군 북이면 사이의 도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갈재’라 고도 하며 호남평야와 전남평야의 두 곡창지대를 잇는 주요 교통로의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인근의 장성 갈재에는 정읍과 장성을 연결하는 1번 국도가 연결되어 있으며 인근에 호남고속도로의 호남터널과 호남선철도의 노령 제2 터널이 관통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정읍)에“위령(葦 嶺)의 위는 혹은 노(蘆)로도 쓴다. 현의 남쪽 30리에 있는 데, 장성현의 경계이다. 또 소위령(小葦嶺)이 있는데, 흥덕현 경계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과거에 위령으로 도 불렀음을 보여 준다.『여지고』(정읍)에도“노령(蘆嶺) 은 일명 위령(葦嶺)이라고 한다. 남쪽 30리에 있다.”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해동여지도』(장성)에는‘소노령(小盧 嶺)’,‘대노치(大盧峙)’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해동여지도』(장성)의 노령(소노령·대노치) 일대

금강 錦江 Geumgang [異]  달계천(達溪川), 송천(松 川), 송탄(松灘), 형강(荊江)

도의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진안군과 무주군을 거쳐 충청북도와 충청남도 를 흐르다가 다시 본도의 익산시 망성면 일대에서 충청남도와 경계를 이루며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국가 하천이다. 도내의 진안군 금강유역은 진안읍·상전면·정천면·용 담면·안천면·부남면 등 진안의 동부 지역에 걸쳐 있다. 부남면을 빠져나간 금강은 무주읍을 거쳐 충청남도 금산 일대로 유입한다. 2001년에 용담 다목적댐이 건설됨으로 써 진안에서의 금강유역이 더욱 넓어졌다. 금강으로 유입 되는 진안내 주요 하천은 진안천, 주자천, 정자천 등이 있 다. 하류부인 군산과 익산시 일대에서는 함열천과 경포천 이 금강으로 유입한다.

조선시대에 금강 상류의 명칭은 유역마다 달리 불렀다. 지금의 용담호 일대의 금강 유역은 달계천(達溪川)이라하였고, 용담호 아래 진안 상전면에서 장수군 천천면으로 이어지는 금강 유역은 송천[松灘]이라고도 하였다.『여지도서』(진안)에“달계천은 현 동쪽 5리에 있다. 무주 덕유산에서 시작되고 북쪽으로 흘러 금산군 경계를 거쳐 무주 소이진(沼爾津, 지금의 무주읍 대차리 서면나루)으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여지도서』(무주)에‘적 천(赤川, 현 무주남대천)’을 설명하면서“적천은 (중략) 금산 경계인 소이진으로 들어가 형강(荊江)에 이른다.”라 고 하였다. 이는 형강이 금강의 다른 명칭임을 보여준다. [지명유래 ➣➣ 제2권 충청도 금강 참조]

 

『대동여지도』(16첩 4면)의 금강(달계) 일대

동진강 東津江 Dongjingang  [異] 통진(通津)

도의 정읍시에서 서북쪽으로 흘러 새만금 사업지구로 유입 하는 하천이다. 유로는 정읍시 상두산 남쪽, 묵방산 북쪽 시의 산외면 상두리와 화죽리에서 발원한 여러 물들이 정 량리에서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칠보면의 시산리 인근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칠보천을 합하고, 옹동면 매정리의 매정교 아래에서 축현천을 합류한다. 태인면을 지나 호남선의 동진강 철교 바로 위에서 용호천을 합류하고, 이평면 하송리의 만석동 앞에서 정읍천, 두전리 의 둑전마을 아래에서 덕천천을 합한 후, 부안군 백산면을 경계지으며 흐르다가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앞에서 고부 천을 합류한다. 이어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의 불당마을 앞 에서 원평천을 합류한 후 황해로 들어가는 국가하천이다.

동진 지명은 동진나루와 관련이 있다.『신증동국여지 승람』(부안)에“동진은 통진(通津)이라고도 한다. 벽골제 와 눌제의 물이 합해져 북쪽으로 흘러 이 나루가 된다. 현 의 동쪽 16리에 있다.”라고 하는 관련 기록이 확인된다. 현재의 동진강은 구간별로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우선 동진강 상류에 해당하는 상두산과 묵방산 자락에서 나온 물이 칠보천과 축현천을 합해 용호천을 만나기까지의 구간은 도원천(桃源川), 평사천(平沙川) 또는 남천(南川)이 라 하였는데,『신증동국여지승람』(태인)에“남천은 현의 남쪽 5리에 있는데, 상두산 남쪽에서 나와 이평에 이르러 정읍의 물과 합쳐서 서쪽으로 흘러 김제군 동진으로 들어 간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정읍시사』에 의하면 도원천이 상두산 북쪽에서 발원 한 용호천(견천)과 합류하여 정읍천을 만나기까지의 구간은 대각천(大角川) 또는 태인천(泰仁川)이라고 하였는데,『신증동국여지승람』(고부)에 태인수(泰仁水),『대동지지』 (태인)에 대각천이라는 명칭이 확인된다. 현재 태인면 거 산리의 거산교 바로 아래에 있는 대각교는『해동지도』(태 인)에도 표시되어 있다. 또『신증동국여지승람』(고부)에 “모천(茅川, 현 정읍천)은 근원이 정읍현의 내장산에서 나온다. 북쪽으로 흘러 군의 동쪽 15리에 와서 서쪽으로 꺾여 태인수(泰仁水, 현 동진강 중상류)와 합하여 부안현의 동진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여 결국 정읍천과 태인의 태인천 또는 남천이 합쳐진 이후의 구간을 동진으로 불렀 음을 알 수 있다.

 

『동여도』(18첩 5면)의 동진강 하류 일대

만경강 萬頃江 Mangyunggang [異] 사천(泗川), 남 천(南川)

도의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율치의 밤샘(또는 진틀, 657m)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황해의 새 만금사업지구로 유입하는 국가 하천이다. 상류로부터 김 제·익산·군산 등의 여러 고을이 발달하여 있다. 완주군 에서는 고산천, 전주에서는 전주천과 소양천, 익산에서는 익산천, 군산시에서는 탑천 등의 여러 지류들이 이 하천 에 합류한다. 하류인 군산 일대의 조석 간만의 차이가 커 서, 만조시에는 전주천과 소양천 및 고산천이 합류하는 대천(한내마을, 삼례대교)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예로 부터 관개와 주운(舟運)에 이용되어, 완주군 봉동읍의 구 만리와 전주천의 추천까지 운항이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 온다. 하천의 발원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우 리䯲람길라잡이』에서는 전북 완주군 동상면의 막은대미 재 북쪽 산록으로 표기하고 있다.

‘만경’지명은 조선시대 하천의 하류에 입지하였던 만경현(현 김제시 만경읍)에서 유래되었다. 만경(萬頃)의 뜻은‘백만이랑’의 의미로 넓은 들을 의미한다. 만경강의 하류에 형성되어 있는 평야는‘김제’와‘만경’의 합성지 명으로 금만평야로 불리기도 한다. 새만금방조제도 여기 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 이 하천은‘사수(泗水)’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여지고』(김제)에“사수(泗水)는 속칭 회연(回淵) 이라고 하는데 그 아래를 율포(栗浦)라 일컫고 그 아래를 신창진(新倉津)이라 일컫는다.”라는 기사가 있고, 동일 문헌의 전주조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전칭으로 불렀음을 보여 준다.『대동여지도』에 도『여지고』에 수록된 율포, 신창진 등의 지명이 표기되 어 있다. 한편 고산현 남쪽의 하천에‘남천(南川)’지명이 표기되어 있어 부분칭으로 사용하였음을 보여 준다.


임실군

 

 

 

임실군 任實郡 Imsil-gun [異] 잉힐(仍掱)

도의 동 남쪽 내륙에 위치한 군이다. 군의 대부분은 섬진강 상류 의 산지 지역이다. 북동쪽으로 진안군, 남동쪽으로 남원 시, 남쪽으로 순창군, 북서쪽으로 완주군과 접해 있다. 노령산맥이 군을 지나고 있어 산지가 많은 편이고, 일부 지 역에 분지가 발달하고 있다. 섬진강과 그 지류인 갈담천 등이 군을 지나고 군 서쪽의 섬진강 상류지역에 전라북도 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저수지인 옥정호가 발달한다.

삼국시대 마한의 청웅현(靑雄縣)이었다가 임실현(일명 운수현(雲水縣)이라고도 함)으로 개칭하였다. 통일신라 시대 남원부에 복속되어 임실군이 되었다가 조선시대 임 실현이 되었다. 1906년 남원부의 지사면(只沙面)·둔덕면(屯德面)·오지면(梧枝面) 등 6개면이 임실군에 편입 되었다. 1979년 임실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현재 임실읍 을 비롯하여 관촌면(館村面) 등 1읍 11면을 관할한다.

『삼국사기지리지』에“임실군(任實郡)은 본래 백제의군(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주군(州郡)의 이름을 고칠 때 및 지금(고려) 까지도 모두 그대로 쓴다. 영현이 둘이었 다. 마령현(馬靈縣) (중략) 청웅현(靑雄縣)”이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이를 통해 그 이전부터 지명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고려사지리지』에“고려에 와서 본남원부(南原府)에 소속시켰으며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두었다.”고 하였으며『세종실록지리지』(임실)에 임실 현으로 수록되어“태종 13년(1413) 계사에 감무를 고쳐서 현감(縣監)으로 하였다.”라고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백제시대에 잉힐(仍掱)이었던 것이 신라 시대에 이르러 임실(任實)로 고쳐졌다.”고 하여 잉힐(仍掱)이라 는 이명도 확인할 수 있다. 임실이란 명칭은“알차고 충 실한 열매를 맺는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특산 물로 치즈가 유명하다.

임실읍 任實邑 Imsil-eup [異] 일도면(一道面), 현내면 (縣內面)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이다. 군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북동쪽으로 성수면, 서쪽으로 운암 면·청웅면, 남쪽으로 삼계면과 둔남면(屯南面), 북쪽으로 관촌면과 신평면에 마주하고 있다. 읍의 대부분은 500~600m의 화강암 산지로 구성되어 있다. 산지의 중간 에 분지가 산재함으로써 경지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읍소재지이자 군청소재지인 이도리(二道里)를 비롯하여 성가리·오정리·두곡리 등 16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 일도면(一道面) 혹은 현내면(縣內面)이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1914년 신안면·이인면·대곡면을 합쳐 임실면이 되었다. 그 후 관촌면 금성리와 1994년 삼계 면 신정리·망정리를 편입하여 현재에 이른다.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호구총수』(임실)에 일도면과 그 관 할 동리로 성거리(城巨里)·두곡리(杜谷里)·남촌리(南村里)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신안면, 이인면도 기재되어 있다.

이후『여지도서』,『대동지지』등에 현내면, 이인면, 신안면, 대곡면으로 기록되어 있다.『해동지도』에 봉황산 아래 읍치가 묘사되어 있고 현내면이 함께 표기 되어 있 는 것을 비롯해『지승』,『광여도』등에 현내면이 묘사되어 있다.

마을 지명 중에 상성(上城)과 하성(下城) 등 성(城)과 관련된 것들이 있는데, 이는 임실읍이 전라북도 동부 산 악권의 남쪽 관문(關門)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상성은‘성안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이란 의미가 담겨있으므로, 지대가 낮은 곳에 자리한 하성의 경우와 대비된다. 읍이 입지한 곳이 나지막한 고원 지대임으로, 마을 이름에는 산지, 계곡, 식생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산지와 관련된 것으로서, 고산(高山)과 장재(藏財)가 대표적이 다. 전자는‘높은 산지에 정착’한 의미이고, 후자는‘산지 에서 재산을 모으고, 감추어두는 곳’에서 비롯된다. 깊은 산속과 관련된 이른바‘깊이 감추어진 곳’의 심장(深藏) 처란 뜻이 담겨 있다. 계곡과 관련된 것으로서 두곡(杜 谷)과 현곡(玄谷)이 대표적이다. 전자가 들이 넓고 수원 (水源)이 좋은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후자는 검은 색깔의 거북이를 닮은 데서 붙여졌다. 이 밖에 식생과 관련된 것 들도 있는데, 수정(樹亭), 지산(芝山)이 대표적이다. 전자 는 암석이 노출된 악산(惡山)에 액막이를 위해서 나무를 심은 것에 비롯되고, 후자는 뒷산이 꽃처럼 아름다운 잔 디를 입힌 데서 붙여졌다.

 

『1872년지방지도』의 임실현 읍치 일대

강진면 江津面 Gangjin-myeon

군의 서쪽에 위치 한 면이다. 섬진강의 우안에 해당되어 지명도‘섬진강을 건너는 나루터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동 쪽으로는 청웅면, 서쪽으로 정읍의 산내면, 남쪽으로 덕 치면, 북쪽으로 운암면과 닿고 있다. 백련산(白蓮山,754m)을 중심으로 면 대부분이 산지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높이는 400~500m에 달한다. 면 소재지인 갈담리(葛 潭里)를 비롯하여 백련리·부흥리 등 10개 법정리를 관 할한다. 본래 구고현이었으나 조선 초기 구고현이 임실군에 폐합됨에 따라 강진면이 되었다. 1914년 구고면의 이윤동 (伊尹洞)을 병합하여 현재에 이른다.


『호구총수』(임실)에 강진면(江津面)이 기재되어 있고 그 관할 동리로 갈담리(葛潭里)·부흥리(富興里) 등이 수 록되어 있다.『여지도서』에도“강진면은 관아에서 30리 이다.”라는 기록이 있는 등 대부분의 지리지에 강진면이 기재되어 있다.『해동지도』에 운암대천(雲岩大川, 지금 의 섬진강) 동쪽에‘강진면’이 표기되어 있으며 갈담역, 서창 등도 그려져 있다. 그 밖에도『지승』,『청구도』(21층 13면),『1872년지방지도』등에도 강진면이 읍치 서쪽에 묘사되어 있다.

이곳의 마을 이름에는 명당의 형국을 의미하는 것이 존재한다. 용수리는 회문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마치 상 서로운 용과 같은 형국이라는 것에서 붙여졌다. 부흥은 부귀영화와 같은 맥락에서, 학석은 학을 닮은 바위에서 각각 붙여졌다. 부흥의 경우 본래 백운산에서 뻗어 내린 줄기가‘쭈그리고 앉은 범의 형국’이고, 그래서‘범 뜰’ 이라 했으므로 명당에서 거론하는‘청룡과 백호’와 일맥 상통한다.

 

『지승』(임실)의 강진면 일대

관촌면 館村面 Gwanchon-myeon

군의 북쪽에 위치한 면이다. 동쪽으로 진안군의 성수면, 서쪽으로 신덕면과 신평면, 남쪽으로 임실읍과 성덕면, 북쪽으로 완주군 상관면과 마주한다. 섬진강의 상류에 입지하며 지류 인 조원천(鳥原川) 유역을 중심으로 200~300m의 평탄 면이 나타난다. 면 소재지인 관촌리를 비롯하여 용산리· 도봉리 등 13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본래 조선시대에 읍치 북쪽이 되므로 상북면(上北 面)·하북면(下北面)이라고 불리던 지역이었다. 1914년 상북면과 하북면을 합치면서 진안군 일서면 평지리 일부 를 병합하고 오원면(烏院面)이라고 하였다. 1935년 당시 면 소재지 선천리를 관촌리로 바꾸고 면 지명도 관촌면으 로 개칭하였다. 관촌(館村)이라는 지명은 과거에 이 일대 에 오원역(烏原驛) 혹은 오원(烏院)이 있었던 것에서 관 주도의 마을이라는 사실을 내포한다.

고문헌에 관촌(館村)은 등장하지 않고, 임실의 북쪽 경계 지점에 있었던 상북면·하북면과‘오원(烏原)역’또는‘오원(烏院)’이 기록되어 있다.『고려사지리지』에 오원이 임실의 역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후『세종실록지리지』(임실)에“역(驛)이 2이니, 오원(烏原)·갈담(葛潭)이다.”라고 기록하는 등 오원역이 수록되어 있다.『신증동국여지 승람』에도 오원천(烏原川), 오원역(烏原驛) 등의 관련 지 명이 등장한다. 한편『호구총수』에 상북면과 하북면이 기 재되어 있으며 그 관할 동리로 지금과 같은 도봉리(道峯 里), 막동(幕洞), 방동(芳洞) 등이 수록되어 있다.『1872 년지방지도』에 읍치 북서쪽 전주·진안 경계에 상북면· 하북면이 기재되어 있고 일대를 흐르는 오원강(五院江) 과 오원원사(烏院院舍)가 함께 그려져 있다.

이곳의 마을 이름에도 지형 조건을 반영하여, 산지·바위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황두(凰頭)는 만덕산이‘봉황 의 머리’를 닮은 데서 붙여졌고, 구암(龜岩)은 마을 앞의‘바위가 거북이 머리’를 닮은 데서 붙여졌으므로,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이런 형국들은 풍수설과 관계되므로, 명당 형국을 내세운 마을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유산(酉 山)과 주천(舟川)은 대표적이다. 전자는 금계(金鷄抱卵) 형의‘닭 뫼’에서 비롯되고, 후자는 배가 물을 건너는‘행주(行舟)형’에서 비롯된다.

덕치면 德峙面 Deokchi-myeon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이다. 동쪽으로 청웅면과 삼계면, 서쪽으로 순 창군 구림면, 남쪽으로 순창군의 인계·적성·동계면, 북 쪽으로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강진면과 마주하고 있다. 면 소재지인 회문리(回文里)를 비롯하여 지도리·사곡리 등 8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본래 구고현 지역이었으며 조선 초기 임실군에 속하였 다. 1914년 아산면 남촌 일부를 병합하여 현재에 이른다.

면 지명은 회문리와 회문산 일대를 고덕치(高德峙)라고 하였는데 이를 줄여 덕치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 다. 고덕치는‘크고 높은 재’라는 뜻으로『임실군지』에서 는 과거 이곳이 신라 경주와 당나라의 무역항이었던 줄포 를 잇는 교통의 요지라고 하였다.『호구총수』(임실)에 덕치면이 기재되어 있으며『여지도서』에“덕치면은 관아에 서 60리이다.”라는 기록이 있다.『지승』에 읍치 남서쪽 발산(鉢山)과 원통산(元通山) 북편으로 덕치면이 표기되 어 있는 것을 비롯해『해동지도』,『청구도』(21층 13면) 등 에서 읍치 남서쪽에 면이 묘사되어 있다.

산지 환경의 제약을 받는 관계로 이와 관련된 지명이 마을 이름으로 존재하는데, 암치(岩峙)와 원치(遠峙)가 대표적이다.

 

『여지도』(임실)의 덕치면 일대


삼계면 三溪面 Samgye-myeon

군의 남쪽에 위 치한 면이다. 동쪽으로 둔남면, 서쪽으로 덕치면, 남쪽으 로 순창군 동계면, 북쪽으로 청웅면과 마주하고 있다. 면 소재지인 삼계리를 비롯하여 후천리·봉현리·세심리 등 14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본래 조선시대 남원부의 아 산방(阿山坊)·오지방(梧枝坊)·말천방(末川坊)·석현 방(石峴坊) 지역이었다. 1906년 4개 면을 합쳐 임실군에 편입시키면서 삼계면이라고 하였다.

『호구총수』(남원)에 아산방(阿山坊)·오지방(梧枝 坊)·말천방(末川坊)이 기재되어 있으며‘돌고개방(乭古 介坊)’이 수록되어 있는데 석현이‘돌고개’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같은 지역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여지도서』 등에는 아산방·오지방·말천방·석현방으로 모두 수록되어 있다.『신구대조』에는 면 단위 행정구역으로 삼계(三溪)가 기록되어 있다.『해동지도』,『광여도』,『지승』등 에 읍치 북쪽 임실과의 경계에 돌고개방(乭古介坊, 석현 방)과 아산·오지·말천방이 묘사되어 있다.

한편 삼계 지명은『대동여지도』등의 지도에 나타나는데 궁천과 작 천 등의 지류가 합쳐 본류를 이룬 것이 삼계(三溪)로 묘사 되어 지명이 그 이전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삼계 지명이‘뇌천·후천·유천’ 의 3내[川]의 뜻을 따서 유래하였다고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17첩 4면)의 삼계면(삼계) 일대

 

 

성수면 聖壽面 Seongsu-myeon

군의 동쪽에 위 치한 면이다. 면의 대부분 지역이 높은 산지로 구성되어 있으나, 섬진강 지류인 둔남천 유역에는 200m 내외의 평 야가 부분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면 소재지인 양지리(陽 地里)를 비롯하여 도인리·삼봉리 등 11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에는 읍치 동쪽에 위치하므로‘동면(東面)’혹 은 상동면(上東面)·하동면(下東面)으로 두 면을 나누어 불렀다. 1914년 두 면과 상북면 비슬리 일부, 남면 봉산 리 일부를 합치면서 성수면(聖壽面)이라고 하였다.

『호구 총수』(임실)에 상동면(上東面)과 동면(東面)으로 기재되 어 있으며 그 관할 동리로 도인리(道引洞)·양지리(陽地 里) 등이 수록되어 있다.『여지도서』에도“상동면은 관아 에서 30리이다. (중략) 하동면은 관아에서 20리이다.”라는 기록이 있는 등『임실읍지』,『호남읍지』등에두 면이 수록되어 있다.『청구도』(21층 13면)에 읍치 동쪽에 상동 면, 하동면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해동지도』,『광여도』 등에서 면을 찾아 볼 수 있다.

지명은 면의 북동쪽에 위치한 성수산(876m)에서 유래 되었다.‘성수’라는 지명에는 이성계와 관련된 전설이 존 재한다. 이성계가 성수산(聖壽山)의 상이(上耳)암에서 백 일기도를 올릴 때‘성수만세(聖壽萬歲)’라는 신의 계시 를 받았다는 것이다. 면에는 상이암 부도(도 유형문화재 제150호), 이석용(李錫庸, 1878~1914) 생가(도 기념물 제91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해동지도』(임실)의 신덕면(상·하신덕면) 일대

신덕면 新德面 Sindeok-myeon

군의 서북단에 위치한 면이다. 동쪽으로 관촌면과 완주군 상관면, 서북 쪽으로 완주군 구이면, 남쪽으로 신평면·운암면에 닿고 있다. 노령산맥의 주능선이 통과하는 지역인 관계로 대부 분 산지 지역에 포함된다. 면 소재지인 수천리(水川里)를 비롯하여 삼길리·신흥리 등 9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본래 조선시대부터 신덕면(新德面) 혹은 이를 분리해 상신덕면(上新德面)·하신덕면(下新德面)이라고 하였다.

1914년 두 면과 신평면의 도곡리·토고리·지장리를 합 쳐 신덕면이라고 하였다.『호구총수』(임실)에 신덕면으로 기재되었으나『여지도서』에“상신덕면은 관아에서 30리 이다. (중략) 하신덕면은 관아에서 40리이다.”라고 기록 된 것을 비롯해『호남읍지』,『읍지』등에는 오늘날과 달 리 신덕면을 상하로 분할했음을 알 수 있다.『1872년지방 지도』에 북쪽 끝의 정각산(井閣山) 남쪽으로 상신덕면과 하신덕면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해동지도』,『광여도』등 에 두 면이 묘사되어 있다. 면에는 수운정(睡雲亭, 도 유 형문화재 제151호), 삼길리 사지(寺址), 조월리 돌덧널무 덤[石壙墓] 등이 있다.

 신평면 新平面 Sinpyeong-myeon

군의 북쪽에 위치한 면이다. 동쪽으로 관촌면, 서쪽으로 운암면, 남쪽으로 임실읍, 북쪽으로 신덕면과 맞닿고 있다. 섬진강 상 류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섬진강의 지류인 오원(烏院) 강 유역에 낮은 산지에 평탄면이 조성되어 있을 뿐 나머지 지역은 해발 고도가 비교적 높다. 이곳은 평탄한 지형 과 함께 일찍부터 관개도 발달하여, 삼한시대부터 마을이 조성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주민들은 주곡 생산에 주력 하지만, 초지가 많은 자연조건을 활용하여 목축업에도 종사하고 있다. 면 소재지인 원천리(元川里)를 비롯하여 창인리, 대리 등 7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조선시대에도 신평면이라고 불리었으며 1914년 토고리·지장리·도곡리가 신덕면이 되고 상신덕면의 상가 리·하가리 등 8개리와 상북면(관촌면)의 가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른다.『호구총수』(임실)에 신평면은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창인평면(昌仁坪面)에 대리(大里) 가 소속되어 있는 등 면에 소속된 마을의 지명을 찾아 볼 수 있다.『여지도서』에“신평면(新平面)은 관아에서 30리 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임실읍지』,『호남읍 지』등 대부분의 지리지에 신평면(新平面)이 수록되어있 다.『해동지도』에 읍치 북쪽에 신평면이 기재되어 있고 오원(烏院), 마항교(馬項橋), 오원교(烏院橋) 등이 묘사되 어 있는 것을 비롯해『지승』,『1872년지방지도』등에 수 록되어 있다.‘신평’지명은 면에 새로운 들(새들) 혹은 큰 들이 많아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이곳의 원천(元泉)과 상천(上泉) 등의 마을 이름에는 섬진강 유역의 수리(水 利) 이용과 관련된 것이 많다.

오수면 獒樹面 Osu-myeon

군의 동남부에 위치 한 면이다. 남쪽을 향해서 흐르는 오수천(獒樹川) 유역 일대에 해당된다. 동쪽으로 남원의 덕과면, 서쪽으로 삼 계면, 남쪽으로 남원의 기매면, 북쪽으로 임실읍과 성수 면, 북동쪽으로 지사면에 닿고 있다. 매봉(610m)을 중심으로 북서부에 500~600m의 높은 산지가 나타난다. 면 소재지인 오수리를 비롯하여 용정리·신기리·둔덕리 등 14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면는 본래 조선시대 남원부의 둔덕방(屯德坊)과 임실현의 남면(南面) 지역이었다. 1914년 둔덕면과 남면을 합 치면서 각각의 앞 글자를 따‘둔남면(屯南面)’이라고 하 였다. 1983년 남원군 덕과면 금암리를 편입하고 1992년 면 이름을 둔남면에서 오수면으로 개칭하였다. 오수는 원 래 리(里) 지명이었으며 이 고장의 충견의 전설에서‘큰 개 오(獒)’자와‘나무 수(樹)’자를 합한 것에서 유래하였 다.『호구총수』에서 임실의 남면과 남원의 둔덕방이 수록 되어 있다.『여지도서』(임실)에서도“남면은 관아에서 10 리이다.”라는 기록과 동일 문헌의 남원부 기록에서“둔덕 방은 관아에서 30리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편‘오수’ 지명은『세종실록지리지』에“역(驛)이 4이니, 통도(通道)·은령(銀嶺)·오수(獒樹)·창활(昌活)이다.”라고 기 록되어 있다.

또한『해동지도』에 둔덕방 남동쪽에 오수역 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대동여지도』(17첩 4면),『광여도』 등에도‘오수’가 기재되어 있다. 무학 대사의 답산(踏山) 길에서‘군신(君臣)들이 모이는 듯한 명당 형국’과‘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각각 군곡(君谷)과 신기(新基)라고 명명한 전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광여도』(남원)의 오수면(둔덕방) 일대

운암면 雲巖面 Unam-myeon

군의 서쪽에 위치 한 면이다. 동쪽으로 신평면과 임실읍, 서쪽으로 완주시 구이면과 정읍시 산외면, 남쪽으로 청웅면과 강진면, 북 쪽으로 신덕면에 닿아 있다. 면 소재지인 쌍암리(雙岩里) 를 비롯한 학암리·선거리 등 14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운암’지명은 다리 이름에서 기원되었다고 하며, 500여 년 전 낙향하여 이곳에 은거한 선비의 아호(雅號)를 따 유래되었다고도 한다.『대동지지』의 교량(橋梁)조에“운 암(雲巖)은 겨울에는 다리[橋]를 놓고, 여름에는 외나무 다리[杠]를 놓는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조선시대 상운 면(上雲面)과 하운면(下雲面) 지역이다. 1914년 학암리 를 비롯한 상운암면, 용운(龍雲)리를 비롯한 하운암면, 쌍암리를 비롯한 상신덕면 등 3개 면을 운암면으로 통합 하였다. 1953년 하운암출장소를 설치했다가 1999년폐 지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운암원(雲巖院)은 현의 서쪽 65리에 있다.”는 관련 기록이 있다.『여지도서』 에“하운면은 관아에서 60리이다. (중략) 상운면은 관아 에서 30리이다.”라고 하였으며『대동지지』,『호남읍지』등에 상운면·하운면이 수록되어 있다.『지승』에 읍치북 서쪽의 익산(翼山)과 당치(唐峙)를 사이에 두고 상운면과 하운면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비롯해『해동지도』,『청구 도』등에 두 면이 기재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유역 변경식수력발전을 하게 한 섬진강의 옥정호가 있으며 댐 건설로 인해 면의 상당수가 수몰되었다.

지사면 只沙面 Jisa-myeon

군의 동부 외곽에 위 치한 면이다. 동쪽 오수천(獒樹川) 너머로 장수군 산서 면, 서쪽과 북쪽으로 덕재와 영대산(靈臺山)을 경계로 삼 고 둔남면과 성수면, 남쪽으로 남원의 덕과면과 닿고 있다. 서부와 북부 지역에 비교적 높은 산지가 있지만, 남동 부 지역은 화강암 산지인 관계로 비교적 저평한 분지가 발달하고 있다. 분지 안에는 섬진강 지류인 오수천이 흐 르고 있다. 면 소재지인 방계리(芳溪里)를 비롯한 관기 리·원산리 등 7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본래 백제 때 거 사물현, 고려 때 거령현 소속이었다가 남원부에 병합되었다. 조선시대에 지사방(只沙坊)이라고 하였으며 1914년 덕고면의 상리 일부와 장수군 외진전면 당동·신덕리 일 부를 병합해 임실군에 편입되어 지사면이 되었다.

『호구총수』(남원)에 지사방과 영천서원리(寧川書院里) 등의 소속 동리가 수록되어 있다.『여지도서』에도 지사방 이“(북쪽) 관아에서 5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해 동지도』에 남원의 북쪽 끝에 위치한 팔공산 아래로 지사 방이 기재되어 있으며 영천서원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 밖에도『광여도』,『1872년지방지도』등에 남원과 임실 경 계부에‘지사방’이 표기되어 있다.

『신구대조』에서“남원 군에 속했던 지사(只沙)가 면 소재지인 금평(琴坪)을 비롯하여, 7개 마을이 모두 임실군으로 이관되었다.”고기 록되어 있다.

 

지승』(남원)의 지사면(지사방) 일대

청웅면 靑雄面 Cheongung-myeon

군의 서쪽에 위치한 면이다. 백련산과 두만산의 산지 사이를 흐르는 갈담천 주변에 위치한다. 갈담천과 그 지류인 구례천, 백 이천 등이 서류하며 서쪽을 제외한 동·북·남쪽으로 산지가 발달해 분지형태를 나타낸다. 동쪽으로 임실읍, 서쪽으로 강진면, 남쪽으로 덕치면과 삼계면, 북쪽으로 운 암면에 닿고 있다. 면 소재지인 구고리를 비롯한 두복 리·향교리 등 8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본래는 백제의 돌평(突坪)현이었다. 신라시대에 구고현으로 고치고, 순화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초기 에 남원에 속했다가 1391년(고려 공양왕 3) 군으로 승격 되었으나 1394년(태조 3)에 임실군에 내속(來屬)되어 구고면이 되었다. 1914년 옥전면과 강진면 서창리 일부를 합쳐 청웅면이 되었다.『삼국사기지리지』에“구고현(九 皐縣)은 본래 백제 돌평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 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고려사지리지』에“고려 초에 본부에 소속시켰으며 공민 왕 3년(1354)에 이 현 사람인 원나라 사신 임몽고불화(林 蒙古不花)가 우리나라에 공로가 있다는 이유로 군으로 승격시켰다.”라고 하였다. 이후『신증동국여지승람』(임 실)에‘구고폐현(九╆廢縣)’,『여지도서』등에는‘구고 면’으로 수록되어 있다.『신구대조』에는 구고(九╆)와 옥 전(玉田) 등 2개 면(面)의 통합으로 청웅면(靑雄面)이 나 타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해동지도』에 읍치 서쪽에 구고면이, 모치(毛峙) 남쪽으로‘옥전면’이 표기된 것을 비롯해 조선 후기 대부분의 지도에 구고면과 옥전면이 수 록되어 있다.‘구고’지명은 시경의‘학명우구고(鶴鳴于 九皐)’, 즉 학이 노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한편 일부에서 일제강점기 구고면과 옥전면을 합치면서 면의 지명을 청웅으로 한 것을 두고『삼국사기』등의 사료에 나타난 청웅은 이곳이 아닌 동북방 50리이므로 당시에 면 지명은 잘못 지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연지명

고덕산 高德山 Godeoksan

군의 북동쪽에 위치 하고 관촌면 운수리와 성수면 삼봉리 사이에 있는 산이다 (고도:625m). 서사면에서 하천이 발원해 구신천에 합류 한다. 구신천이 산 북편을 흐르며 이를 경계로 진안군 성 수면과 경계한다. 산에 덕봉암이 있다.『여지도서』(임실) 에“고덕산은 사자산에서 뻗어나온다. 관아의 북쪽 40리 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임실읍지』,『호남읍지』 등에는 고덕산을 북쪽 20리에 있는 산이라고 하였다.

 

대동여지도』(17첩 4면)의 고덕산(고달산) 일대

나래산 Naraesan [異] 익산(翼山)

군의 운암면 운 종리에 있는 산이다(고도:544m). 남쪽을 제외하고 주변 이 옥정호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사면으로 27번 지방도 와 27번 국도가 지나가며 운암터널이 있다. 나래산은 익산(翼山)이라고도 부른다.『여지도서』(임실)에“익산(翼 山)은 백련산에서 뻗어나온다. 관아의 서쪽 40리에 있 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후『임실읍지』,『호남읍지』등에 도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호남지도』에 운암대천(雲 巖大川) 서편, 율치 북쪽의 산으로 익산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비롯해『해동지도』,『광여도』등에‘익산’으로 표기 되어 있다.

산 지명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임 진왜란 때 왜적이 섬진강을 따라 이곳으로 쳐들어오자 수 많은 아군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 이 산에 군량 미를 쌓아놓은 노적가리처럼 이엉을 엮어서 덮어 놓았다. 전라도 사투리로 이엉을 날개라고 하는데, 이 날개가 나 래로 변하여 나래산으로 된 것이다.


두만산 斗滿山 Dumansan

군의 남쪽에 위치하고 북쪽의 백이산과 남쪽의 원통산 능선을 따라 임실읍 두만리와 청웅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525m). 산 서쪽 사면에서 구례천이 발원해 갈담천에 합류하고, 동쪽사 면에서는 임실천이 발원해 임실읍을 북동류하다가 섬진 강에 합류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두만산은 현의 서쪽 11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여지도서』와『대 동지지』등에 산이 수록되어 있다.『대동여지도』에는 동 쪽 성수산(聖壽山)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고달산(高達山) 을 지나 읍치 남쪽의 두만산에 이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도『호남지도』,『청구도』(21층 13면) 등에 읍치 남쪽으로‘두만산’이 표기되어 있다. 지명과 관련해『임실군지』에‘두만’은 화전민이 들어와 산을 일구어 비 옥하게 만들었으며 외지에서 곡식을 사러오는 사람들에 게 말[斗] 가득히[滿] 담아준 것이 알려지면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묵방산 墨方山 Mukbangsan

군의 운암면 마암리와 정읍시 산외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538m). 서쪽사면에서 상하천이 발원해 동진강에 합류하고 동쪽 사면에는 섬진강의 옥정호가 있다. 조선시대 임실 지리지 에서 묵방산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대동지지』,『여 지고』등에서 태인현(지금의 정읍시)“묵방산(墨方山)은 남동쪽 45리에 있는 산이다.”라고 수록되어 있어 그 위치 를 짐작할 수 있다.『해동여지도』(임실)에 현 서쪽 태인과 의 경계지역이며, 종산치(終山峙) 남쪽의 산으로 묵방산 이 묘사되어 있고『1872년지방지도』에도 수록되어 있다. [지명유래 - 정읍 묵방산 참조]

백련산 白蓮山 Baengnyeonsan [異] 영취산(靈鷲山)

군의 서쪽에 있는 산이다(고도:754m). 주변 산지에 비 해 높고 험준하며 산의 능선은 청웅면과 강진면의 경계를 이룬다. 산에서 발원한 하천들은 갈담천이 되고 북쪽사면 에 용추제, 두복저수지 등이 발달한다. 백연암, 백용암 등 의 사찰이 있다.『대동지지』에“백련산(白蓮山)은 일명 영취산(靈鷲山)이라고도 하는데, 백련·영취 모두 절 이 름이며 서쪽으로 30리에 있다.”라고 했다. 이를 통해 백 련산을 영취산이라고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신증동국 여지승람』에는“영취산(靈鷲山)은 현의 서쪽 30리에 있 다.”라고 하였다. 이후『여지도서』,『호남읍지』등의 지리지에‘백련산’으로 수록되어 조선 중기를 전후해 지명 표기가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여지도서』에는“백련 산은 사방이 험준하게 삐쭉 솟아 있다. 둘레는 30리 남짓 이다. 안에는 용추가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갖가지 말 이 있던 곳이다.”라고 하였다. 산 지명과 관련해 상봉 모 습이 하얀 연꽃 봉우리 같아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시묘살이를 함께 했던 흰 제비가 이 산으로 날 아가‘흰 백(白)’,‘제비 연(燕)’자를 써서 백연산이라고 하였으나 백련산으로 변했다는 설도있다.

백이산 伯夷山 Baegisan [異] 배산   

군의 운암면 학암리와 청운면 항교리·임실읍 신안리 일대에 위치한 산이다(고도:531m). 산에서 백이천, 석보천 등이 발원 하며 북서쪽은 옥정호와 섬진강 본류에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의 관리 송경원(宋慶元, 1419~1510)이 단종이 폐 위된 후 벼슬을 내려놓고 이곳에 들어와 세상과 등지고 숨어살았다. 이것을‘백이숙제’에 비유해 산 지명이 유래 하였다고 전한다.

성수산 聖壽山 Seongsusan

군의 성수면 성수리 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876m). 남서쪽의 팔공산과 이어지는 산줄기로 동쪽 사면 에서 발원한 하천은 섬진강 본류를 이루고 서쪽에서 성수 천, 남천 등의 하천이 발원해 오봉저수지, 성남저수지 등 을 만든다.『여지도서』(임실)에“성수산(聖壽山)은 장수 의 팔공산에서 뻗어 나온다. 관아의 동쪽 30리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가지사(迦智寺), 심원사(深源寺), 상 이암(上耳菴)이 있다고 하였다.『호남지도』에 현의 동쪽 끝 장수와의 경계에 성수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아래로 상 이암 등의 사찰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 밖에도『해동지 도』,『대동여지도』(17첩 4면) 등의 지도에‘성수산’이표 기되어 있다. 산에는 신라 때 창건했다고 알려진 상이암 (上耳菴)이 있는데 이 사찰은 왕건과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함께 백일기도를 올린 곳이며 이성계도 이 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이 되었다는 전설 전한다. 특히 산 지명은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릴 때‘성수만세(聖壽萬歲)’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것에서‘성 수산’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광여도』(임실)의 용요산 일대

용요산 龍腰山 Yongyosan [異] 사요산(蛇繞山), 용요산(龍繞山)

읍의 북쪽에 위치한 산이다(고도:490m). 산에서 석보천이 발원해 서류하다가 섬진강에 합류한다. 산 주변으로 현곡2제, 두곡제 등의 저수지가 발달한다. 한자 뜻에서 보듯이 용과 관련되어 이름이 유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용요산(龍繞山)은 사요산(蛇繞 山)이라고도 하는데, 현의 북쪽 5리에 있는 진산이다.”라 고 기록되어 있다. 용의 몸통처럼 꿈틀대는 모양새를 산 이름에 반영하여‘읍성의 진산’이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 다. 이러한 내용은『대동여지도』에 잘 묘사되어 있다. 성 수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고달과 두만으로 이어지고, U 자형으로 굽이치면서 말단에서 우뚝 선 것이 바로 용요산 으로 그려져 있다. 이 산은‘읍성의 주산’과 다름이 없는 위치에 있다. 뱀보다 용이 격상(格上)된 위치에 있으므 로, 본래의 뱀이 용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대지형도에서 는 이 산을 용요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음운에서 같더라 도 의미에서 다르다. 요(腰)는 허리를 뜻하므로 구부러진 모습에서 비슷하지만, 몸 전체가 꿈틀대는 용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산의 산록에는 성가(城街)와 현곡(玄 谷)이란 마을이 있다. 전자는 읍성의 안전을 위하여‘축 성(築城)된 유적지’와 관계되고, 후자는 산 아래에 펼쳐 진‘검은 골짜기’와 관련된다. 

원통산 元通山 Wontongsan  [異] 원통산(圓通山, 遠 痛山)

군의 덕치면 사곡리·두지리·가곡리, 삼계면 학정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603m). 남쪽으로 시루봉, 북쪽으로 지초봉과 연결된 산줄기를 이룬다. 서쪽 사 면에서 평지천이 발원해 섬진강에, 동쪽 사면에서 후곡천이 발원해 오수천에 합류한다.『여지도서』(임실)에“원통산(元通山)은 두만산에서 뻗어나온다. 관아의 서쪽 35리 에 있다.”고 하였다. 이후『여지고』에“원통산(元通山) 혹 은 원통산(圓通山)이라고 하였다. 서남쪽 40리에 있다. 남원(南原)의 경계이다.”라고 하였다.『광여도』에 읍치 남서쪽 덕치면 지역이며, 발산(鉢山)과 이어진 산줄기로 원통산(元通山)이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해동지도』,『1872년지방지도』등의 주요 군현지도에 산이 읍치 남서 쪽으로 묘사되어 있다.

산 지명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김해 양씨 가 멀리서 산세가 좋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와서 조상들 을 모실 명당자리를 찾았으나 헛수고를 하고, 순창에 명 당자리를 잡았다. 그 뒤부터 먼 곳에서 찾아 왔다가 헛걸 음하고 마음을 아파하며 돌아갔다고 해서‘멀 원(遠)’,‘아파할 통(痛)’을 써서 원통산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회문산 回文山 Hoemunsan [異] 회문산(回門山), 개 문산(開門山)

군의 서쪽 강진면 용수리와 순창군 구 림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837m). 북쪽 섬진강에 인접한 높은 산으로 노령산맥 줄기이다.『신증동국여지 승람』(임실)에“회문산(回文山)은 현의 서쪽 50리에 있 다.”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여지도서』에서 회문산(回門 山)으로 한자를 달리해 수록되었으며“순창의 무림산에 서 뻗어나온다. 관아의 서쪽 40리에 있다. 산의 형세가 높고도 크며 커다란 돌이 병풍처럼 서 있다. 민간에서는 흔히‘개문산(開門山)’이라고도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대동지지』에는“회문산(回文山)이 서남쪽으로 60리이고, 순창과 경계를 이룬다.”고 했다.

『해동지도』에읍치 서쪽을 흐르는 운암대천(雲岩大川, 지금의 섬진강)의 서편으로 회문산(回門山)이 묘사되었으며『대동여지도』 (18첩 4면),『청구도』(21층 14면) 등에는‘회문산(回文 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에 회문 혹은 개문이라는 천 연적인 돌문이 있는 것에서 산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한 다. [지명유래 - 순창 회문산 참조]

 

『해동지도』(임실)의 회문산 일대

국사봉 國師峰 Guksabong [異] 국사봉(國士峰)

군의 신덕면과 운암면 경계에 위치해 있는 봉우리이다(고도:352m). 산 남쪽은 옥정호에 접해 있으며 북쪽에서 발원한 하천이 옥여동천에 합류한 뒤 옥정호로 흘러들어 간다. 현대지형도에서는 국사봉(國士峰)으로 한자를 달 리해 표기하고 있다. 인접한 곳에 백련산, 상두산 등의 불 교와 관련된 지명의 산이 있다. 특히 가까운 용운리에는‘부처와 같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불암동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고 있다.

금당재 金堂- Geumdangjae [異] 금당치(金堂峙)

군의 북동쪽 관촌면 도봉리와 임실읍 금성리 사이에 위치 한 고개이다. 고덕산과 용암산 사이에 위치하며 서쪽 사 면에서 발원한 하천이 구신천으로 들어가고 남쪽에서 발 원한 하천에 의해 금당저수지가 형성되어 있다.『여지도 서』(임실)에“동쪽 진안 경계에 있는 금당치(金堂峙)에서 오는 길이 1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여지고』에는 “금당치(金堂峙)는 진안(鎭安)의 영로(嶺路)를 보면 금당치(金塘峙)라고 하였다. 순창(淳昌)과의 경계이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금당치(金堂峙)가 임실에서 장수로 통하는 길목에 묘사되어 있다. 내륙 산간의 고을인 임실과 장수를 왕래하는 교통로의 기능을 예전 부터 담당해온 것을 보여 준다.

 

『대동여지도』(17첩 4면)의 금당재(금당치) 일대

대치 大峙 Daechi   

군의 서북쪽에 위치한 고개이 다.『대동지지』에“대치(大峙)는 현(縣)의 서북쪽 30리에 있고, 병행해서 전주와의 경계가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대동여지도』에는 대치는 백운과 운암을 잇는 큰 산 줄기에 묘사되어 있다.

마재 Majae [異] 마치(馬峙)

군의 남쪽에 위치한 고 개이다. 임실읍과 오수면을 연결하는 통로에 해당하며, 고달산(高達山)과 두만산(斗滿山)을 잇는 산줄기의 안부 (鞍部)에 자리 잡고 있다.『대동여지도』에는‘마치(馬 峙)’로 기재되어 있지만, 현대지형도에는‘말치’로 기재 되고 있다. 마(馬)의 우리말과 재를 한자화한 치(峙)가 혼 합된 것이다.

모래재 Moraejae [異] 사현(沙峴)

군의 임실읍 장 재리와 청웅면 옥전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남쪽의 두만산과 북쪽의 백이산 사이의 상대적으로 낮은 곳이며 30번 지방도가 고개를 지나간다.

모래재는 한자화하여‘사현(沙峴)’으로 사료에 수록되어 있다.『신증동국여지 승람』(임실)에“사현(沙峴)은 구고현(九╆縣)에 있으며, 본 현(縣)으로부터 20리이다.”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대 동지지』에도 동일하게“사현은 서쪽으로 20리에 있다.” 라고 기재되어 있다.『청구도』에 사현은 읍성과 구고현의 중간에 크게 묘사되어 있다.『대동여지도』에도“사현은 두만과 백련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면서, 임실과 갈담(葛潭)을 잇는 통로”로서 기능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개 지명은 이곳에 모래가 많이 난다는 것에서 유래되었 다고 한다.

 

『청구도』(21층 13면)의 모래재(사현) 일대

밤재 Bamjae [異] 율치(栗峙)

군의 서쪽에 위치한 고개이다. 강진면의 학석리(鶴石里)와 운암면 운암리(雲 岩里)를 연결한다. 남사면에서 이윤천이 발원하고 고개 서쪽에 섬진강이 만든 옥정호가 있다. 27번 지방도와 27 번 국도가 모두 지나며 율치터널이 있다. 우리말의‘밤 재’를 한자화할 경우 율치(栗峙)가 되지만‘밤나무가 우거진 재’란 점에서도 마찬가지다.『여지도서』(임실지도) 에 강진면 북쪽에 율치가 표기되어 있어 그 이전부터 지 명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대동지지』에는“율치(栗 峙)는 서쪽으로 두 곳이 있는데, 갈담(葛覃)에서 전주로 통하는 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대동여지도』에갈 담(葛覃) 북쪽이면서, 사현(沙峴)에서 서쪽 두 갈래로 산 줄기가 나뉘어져 한 줄기는 백련산과 당치로 이어지고 한 줄기는 율치가 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호남지도』,『해동지도』등에도 읍치 서쪽 섬진강가의 고개 로 율치가 묘사되어 있다.

갈담천 葛潭川 Galdamcheon    

군의 청웅면과 강 진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이다. 청웅면의 백이산, 두만산, 백련산 등 여러 산에서 시작된 지류들이 모여 갈담천을 이룬다. 백이천과 구례천은 그 대표적 지류이다. 또 옥석 리에서 흘러나온 주치천과 방현리 율치에서 내려오는 이 윤천도 유입된다. 갈담천은 강진면 면 소재지를 지나 덕 치면 회문리 앞에서 섬진강으로 들어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임실)에‘구고천(九╆川)’으로 기 록되어 있으며 사현(沙峴, 현 옥전리 모래재) 남쪽에서 발원하고 갈담역(葛潭驛)을 거쳐 순창 적성진(赤城津)의 상류로 들어간다고 수록되어 있다.『여지도서』(임실)에 “구고천은 현 서쪽 30리에 있고 백련산 용추(龍湫)에서 발원하고 갈담천이 된다.”라는 기록이 있다. 두 기록을 통해 예전에는 갈담천의 상류인 백이천부터 갈담에 이르 는 하천 본류를‘갈담천’이라 하였고, 백련산 북쪽 사면 두복리에서 내려오는 하천을‘구고천’이라 하였던 것으 로 추측된다.

 

 

『해동지도』(임실)의 갈담천(갈담교) 일대

구신천 求臣川 Gusincheon

군의 관촌면과 진안 군 성수면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하천이다. 진안군 구신리 내동산 남쪽에서 시작되어 관촌면 방현리 부근에서 섬 진강으로 들어간다.『1872년지방지도』(진안)에 지금의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求臣里)가 표시되어 있고 그 앞으 로 하천이 그려져 있다. 하천 이름은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변에 내동산(來東山)과 고달산(高達山, 현 고덕산) 등 이 표현되어 있다. 구신천 이름은 구신리 마을 지명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둔남천 屯南川 Dunnamcheon [異] 평당원천(坪堂院 川), 순천(冐川)

군의 성수면과 오수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이다. 성수산에서 발원한다. 삼봉산에서 시작되는 삼봉천(三峰川)과 성수산 남쪽 구름재에서 시작되는 성수천(聖壽川)이 중간에 유입된다. 성수면 면 소재지를 지난 뒤 계속 남쪽으로 흘러 오수면 면 소재지 남쪽에서 오수 천으로 흘러들어간다. 오수천을 거쳐 섬진강에 들어가므로 섬진강 수계의 하천이다.

17번 국도가 오수천과 나란히 지나간다. 상류 지역에는 성수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임실)에‘평당원천(坪堂院川)’이 라는 하천이 나온다.“현의 남쪽 15리에 있다. 현의 동쪽 대용점(代用岾)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남원 오수역(獒 樹驛)의 남쪽에 이르러 거령천(居寧川)과 합한다.”는 기록이 있다. 오수면 군평리에‘평당’이라는 자연마을 명칭이 남아 있고, 설명 내용을 고려해 볼 때 지금의 둔남천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에서 언급된 거령천은 지금의 오수천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지도서』(임실)에“순천(冐川)은 현 남쪽 25리에 있고, 성수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남원 오수역 앞 에 이른다.”라고 수록되어 있다.『호남읍지』(임실),『전라 북도각군읍지』(임실) 모두‘순천’이 기록되어 있다.『대 동여지도』에‘성수산’아래서 시작되어 오수를 거쳐 지금 의 오수면 둔덕리‘삼계석문(三溪石門)’에 이르는 하천 이 묘사되어 있고, 상류에‘평당원천’하류에‘순천’이라 고 각각 표기하였다.『조선지형도』에는‘둔남천(屯南川)’ 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수면은 원래 조선시대 남원부 둔 덕방(屯德坊)과 임실현 남면(南面)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1914년에 두 면을 합해 둔남면(屯南面)이 되었다가 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둔남 천은 원래‘평당원천’이라고 하였다가 후에‘순천’으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대동여지도』(17첩 4면)의 둔남천(평당원천) 일대

상월천 上月川 Sangwolcheon

군의 관촌면에 있는 하천이다. 완주군과 경계를 이루는 마재 남쪽에서 시작되어 관촌면을 관통하면서 남쪽으로 흐른다. 방현리 남쪽에서 섬진강으로 들어간다.『해동지도』(임실)에 하북삼 면(지금의 관촌면 일부) 일대에 신흥사와 오원교 등이 표 시되어 있다. 그리고 신흥사에서 시작하여 오원교까지 이 어지는 하천도 함께 표현되어 있다. 이 하천은 지금의 상 월천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하천 이름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상월천은 마을 이름 상월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상월리는 1914년에 상귀리(上歸里)와 월은리 (月隱里)를 합쳐 생긴 마을지명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월 천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되었다.

어은천 漁隱川 Eoeuncheon

군의 삼계면 어은리 와 삼은리 지역을 흐르는 하천이다. 어은리 주변 산지에서 발원을 하고, 중간에 오지리에서 내려오는 호암천이 유입된다. 뇌천리에서 오수천으로 들어간다. 오수천을 거 쳐 섬진강으로 들어가므로 섬진강 수계에 속한다. 어은천 은 하천 길이는 짧은 편이지만 하천 주변에 농경지가 넓 게 형성되어 있다. 어은천은 상류에 위치한 어은리 지명 (漁隱里)에서 따온 것이다. 어은리는『호구총수』에 남원 부 오지방(吾枝坊)의 관할 방리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어은천 이름도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수천 獒樹川 Osucheon [異] 거령천(居寧川)     

군 의 남동부 지역을 흐르는 하천이다. 장수군 산서면 동부 에 있는 여러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하천을 이룬다. 임실군 내로 흘러들어와 지산면·오수면·삼계면을 거 친다. 다시 순창군 동계면으로 들어가고 순창 적성면의 평남리 아래에서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장수군 산서면의 초압천·동화천이, 순창군 지사면의 금평천·원산천이 합류한다. 또 오수면에서는 성수산에서 발원하는 둔남천 과 남원 보절면에서 흘러온 율천이 오수천과 만난다. 이 외에도 삼계면에서 유천과 어은천이 오수천으로 흘러들 어온다.

『해동지도』(남원)에‘오수역’앞을 지나는 하천이 그려 져 있다. 하천 이름은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지금의 오수 천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 표시된 덕고방(德古 坊)은 지금의 남원시 덕과면과 오수면의 일부를 관할하 던 방(坊)의 명칭이고, 오른쪽의 지사방(只沙坊)은 지금 의 지사면에 해당한다.

그리고 지사방과 덕고방 중간에 표시된 현계서원(玄溪書院)은 지금의 현주서원(玄洲書院)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임실)에“평당원천(坪堂院川)은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 현의 동쪽 대용점(代用岾)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남원 오수역(獒樹驛)의 남쪽에 이르 러 거령천(居寧川)과 합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서‘평당원천’과‘거령천’은 각각 지금의‘둔남천’과‘오수천’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오수천이 지나는 지 사면의 옛 이름이‘거령’이었고 지금도‘영천리’라는 마 을 이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수천의 이름은 원래‘거령천’이라고 하다가 나중에 오수역 이름을 따서‘오수천’으로 바뀌었거나, 오수역 북쪽 상류를‘거령천’ 으로, 그 이남을‘오수천’으로 각각 따로 불렀을 수도 있 다. [지명유래 ➣➣ 순창 오수천 참조]

 

『청구도』(21층 13면)의 오수천(오수역) 일대

옥녀동천 玉女洞川 ongnyeodongcheon   

군의 신덕면에 있는 하천이다. 신덕면 북쪽 끝에 있는 옥녀봉 에서 시작된다. 운암면 면 소재지를 지나 섬진강에 들어 간다. 수천리에서 흘러나오는 제목천과‘작은불재’에서 흘러나오는 서이치천이 옥녀동천과 합해진다.『1872년지 방지도』(임실)에 지금의 신덕면에 해당하는‘하신덕면(下 新德面)’과 물염(勿染), 빙채(氷債), 조월(鳥越), 애치(艾 峙, 즉 쑥재) 등의 자연마을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또 그 북쪽에 정각산(井閣山, 현 경각산)도 표시되어 있다. 그 러나 옥녀봉과 하천 표시는 되어 있지 않다. 옥녀동천 이 름은 옥녀봉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율천 栗川 Yulcheon

군의 오수면 남쪽에 있는 하 천이다. 남원시 보절면 동쪽 산지에서 발원한 여러 소지 류들이 모여 율천을 이룬다. 보절면 면 소재지를 거쳐 임실군 지역으로 흘러든다. 오수면 둔덕리 부근에서 오수천 으로 흘러들어가 섬진강으로 이어진다. 남원시 사매면 대 신리에서 흘러나오는 매내천과 덕과면 덕촌리에서 흘러 나오는 수외천이 율천으로 들어온다. 율천은 하천 길이에 비해 유역면적이 넓은 편이다. 주변에 농경지가 넓게 펼 쳐져 있다.

『1872년지방지도』(남원)에 천왕봉(天王峰, 현 보절면 동쪽 끝 천황산) 아래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그려져 있 다. 또 적과면(迪果面, 현 남원 덕과면의 일부)과 그 소속 방리가 표시되어 있다. 표시된 방리 중에 율촌(栗村)이 포함되어 있다. 이로 보아 이 하천은 지금의 율천을 나타 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호구총수』에 남원부 적과면 율천리(栗川里)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율천 이름은 오 래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임실천 任實川 Imsilcheon [異] 두만천(斗滿川), 갈천 (葛川)

군의 임실읍에 있는 하천이다. 임실읍 남쪽에 있는 두만산 일대에서 시작되어 북쪽으로 흐른다. 임실읍 시가지를 관통한 뒤 신평리 창인리 부근에서 섬진강으로 들어간다.『신증동국여지승람』(임실)에‘두만천(斗滿川)’ 으로 기록되어 있으며“두만산에서 나와 객관 남쪽을 거 쳐 동쪽으로 흘러 오원천(烏院川, 현 임실 일대의 섬진 강)으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여지도서』(임실)에 는‘갈천(葛川)’으로 수록되어 있다. 유로 설명이‘두만 천’의 경우와

『대동여지도』에는‘두만천’으로 표시되어 있다. 두만산 북쪽에서 시작되어 임실 읍치를 동쪽으로 휘돌아 북쪽 으로 흐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후『조선지형도』에 는‘임실천(任實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임실천이 지금 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이고, 그 이전에는 발원지점을 강조하는‘두만천’으로 주로 불 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동여지도』(17첩 4면)의 임실천(두만천) 일대

지장천 智長川 Jijangcheon    

군의 신덕면에 있는 하천이다. 신덕면 북쪽 끝에 있는 갈미봉 아래서 시작된 다. 남쪽으로 흘러 신덕면을 관통한 뒤 신평면 면 소재지 아래서 섬진강과 만난다. 하천 이름은 지장리 마을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호구총수』에‘창인평면(昌仁坪面) 지장(知莊)’방리가 기록되어 있다.『1872년지방 지도』(임실)에는 신평면(新平面) 지장(智壯)으로 표기되 어 있다. 한자는 다르지만, 현 지장리(智長里)일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지장천 이름도 오래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후곡천 後谷川 Hugokcheon    

군의 삼계면에 있는 하천이다. 삼계면 서쪽 산지에서 발원하는 소하천들이 모 여 후곡천을 이룬다. 동쪽으로 흘러 후천리에서 오수천으로 유입된 후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삼계면 면 소재 지 일대에서 흘러나오는 유천이 중간에 합류한다.『1872 년지방지도』(남원)을 보면, 아산면(阿山面, 현 삼계면 남 부에 있던 면)에 하천이 하나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하천 주변으로 후천(後川)·봉현(鳳峴) 등의 마을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이 하천은 후곡천을 나타낸 것으로 여겨 진다. 지명의 정확한 유래는 알기 어렵다. 아마도 후천리 가 이 일대 중심 마을이었고, 이 후천리 뒤 계곡에서 흘러 나오는 하천이라 해서 오래전부터‘후곡천’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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