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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덴마크 섬) [Greenland]

by 임실사랑 2009. 11. 20.

그린란드 (덴마크 섬)  [Greenland]

(덴)Grønland. 그린란드어로는 Kalaallit Nunaat.

세계에서 가장 큰 섬.

북대서양의 북극권 안에 전국토의 2/3 이상이 있다. 수도는 누크(고드타프)이다. 북쪽에서 남쪽까지의 길이가 약 2,670km이고 동서 최장 길이는 1,050km 이상이다. 캐나다의 엘즈미어 섬으로부터 북쪽으로 26km 떨어진 곳에 있다. 남동쪽에 있는 덴마크 해협 너머 320km 지점에 있는 아이슬란드가 그린란드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국가이다. 굴곡이 아주 심한 그린란드의 해안선 길이는 3만 9,330km로, 적도에서의 지구 둘레와 거의 같다. 면적 2,166,086㎢, 인구 56,600(2003 추계).

자연환경

그린란드의 가장 중요한 자연적 특징은 남극대륙의 빙상 다음으로 큰 거대한 빙상이다. 이 빙하의 두께는 평균 약 1,500m로서 가장 두꺼운 곳은 3,000m나 된다. 또한 면적이 179만㎢가 넘고, 이것은 그린란드 총 육지면적의 약 85%에 해당한다. 얼음이 덮이지 않은 나머지 땅은 해안지방들로서 주로 고원으로 되어 있고, 동서해안을 따라 산맥이 펼쳐져 있으며, 높이는 남동쪽 군뵈른스펠에서 최고 3,700m에 달한다.

그린란드는 북극성 기후이다. 겨울(1월)평균기온이 남쪽에서는 -6℃이고 북쪽에서는 -35℃이다. 남서부 해안의 여름 기온은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다소 누그러져 7월평균기온이 7℃이다. 한편, 북쪽 끝의 여름평균기온은 3.6℃이다. 연평균강우량은 남쪽의 경우 1,900㎜가 넘지만, 북쪽에서는 약 50㎜이다.

그린란드는 툰드라 특유의 식물분포를 이룬다. 얼음으로 덮이지 않은 지역에는 약간의 자작나무·버드나무·오리나무가 가까스로 조금 자라나 왜소한 관목을 이룰 뿐 교목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남쪽 끝에서는 양 사육용 겨울 건초가 재배되며, 남서쪽 해안을 따라 무·양배추·상치·감자와 같은 야채가 재배된다. 북극곰·사향소·순록·북극여우·산토끼·흰담비, 북극쥐 등 7종의 육지 포유동물이 있다. 주위의 바다에는 물범과 고래가 있으며 강에는 연어와 송어가 있다.

그린란드에는 상업성이 있는 납·아연·빙정석(氷晶石)이 매장되어 있다. 1970년대의 탐사를 통해 우라늄·구리·몰리브덴 매장 가능지대가 발견되었으나 기후나 생태학적 측면을 고려하여 광물자원 개발을 상당히 제한하고 있다.

국민

주민의 4/5 이상이 그린란드 원주민이며, 약 1/6은 덴마크 이주자들이다. 그린란드 원주민들은 주로 이누이트라고 하는 에스키모족이지만 초기 유럽 이주자들의 피도 많이 섞여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북서쪽 끝의 툴레 주위와 동(東)그린란드에서만 순수 이누이트를 볼 수 있는 상태이다. 주민들은 아주 넓게 흩어져 살고 있으며, 대부분 규모가 아주 작은 해안 정착지에 있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세계 평균 정도로 낮은 편이며, 연인구증가율 또한 아주 낮다. 15세 이하는 전체 인구 중 약 1/4에 불과하다.

경제

그린란드는 혼합 민간기업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하며, 국민총생산의 주원천은 어업과 광업이다. 농업은 그린란드 전체 면적의 약 1%인 남쪽의 얼음이 없는 지역에서만 가능하며, 건초와 야채가 유일한 재배작물이다. 이 지역 대부분에서는 식용고기·양모·우유 생산을 위해 양과 순록을 방목한다. 북쪽 지역에서는 사냥이 경제의 기반이 되며, 바다표범·여우·북극곰에게서 모피를 얻고, 바다표범으로부터는 식용고기와 기름도 얻는다. 대서양 대구와 새우류가 연간어획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고기와 갑각류는 국내수요를 충당할 뿐 아니라 그린란드의 주요수출품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채굴되는 주요광석은 납과 아연이다. 주요공업제품으로는 냉동어류·어류통조림·건어물·훈제어류·정광(精鑛)이 있다. 전력은 모두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다.

매년 덴마크에서 주는 정액 보조금과 수입관세 및 조세를 바탕으로 한 수입액은 자치단체·교육·문화·사회복지 교부금으로 지출된다. 그린란드는 덴마크를 통하여 국제기구에 참가하고 있다.

철도는 얼음이 없는 지역에만 짧게 놓여 있으며 내륙에서는 썰매를 이용한다. 선박과 항공편이 주요수송수단이다. 그린란드의 연간 수출액은 수입액의 평균 약 3/5으로, 주로 어류·가공어류·금속광석·정광을 수출하며, 기계·수송장비·석유제품과 여러 가지 공산품 및 식품 등을 수입한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덴마크·노르웨이·독일·미국이다.

정치·사회

공식적으로는 덴마크에 속하지만, 지방자치 규정에 따른 재판권과 조세·교육·사회복지체계·문화행사·국교(國敎)에 대한 자치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린란드의 주권행사와 외교관계 및 국방에 대한 통제권은 덴마크가 갖고 있다.

그린란드의 권력 중심부는 란트스팅으로, 18세 이상의 모든 성인이 선출하는 임기 4년의 국회의원 26명으로 구성된다. 란트스팅에서는 다수당의 지도자가 정원 7명의 란트스티어를 구성하여 그린란드의 행정을 담당한다. 최고 사법권은 전문판사 1명을 둔 유일한 법원인 란트스레트에 있다. 대표 2명을 선출하여 덴마크 국회(폴케팅)로 보내며, 또한 덴마크의 그린란드 성(省)이 그린란드와 덴마크 정부를 연결한다.

덴마크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그린란드 정부는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복지혜택을 주고 있다. 주민들은 덴마크 정부가 관리하는 무료 보건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복지사업으로 그린란드의 위생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평균수명은 약 63세이다.

9년간의 초등교육과정은 의무교육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2년과정의 보습학교(補習學校)를 다니고, 그 후에는 2년과정의 '전문과정'학교를 다닐 수 있다. 그린란드 본토인 교사의 수가 적기 때문에 덴마크어로 교육하며 덴마크에서 교육받은 교사를 많이 고용한다. 그린란드어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일반적으로 그린란드어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린란드어를 통달한 학생은 반밖에 되지 않는다.

문화

그린란드에 덴마크 사람들이 들어와 서구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계속 전통적인 에스키모의 문화활동을 답습하고 있다. 특히 활석 조각·북춤과 같은 민속예술이 일반대중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

역사

에스키모인들은 BC 3000년경부터 그린란드로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사르카크 문화(BC 1400∼700경)와 도싯 문화(BC 700∼AD 1300경)라고 하는 서로 다른 2가지 문화가 전해지고 있다.

982년 살인을 저지르고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당한 노르웨이의 적면아(赤面兒) 에리크가 그린란드에 정착했다. 986년 아이슬란드로 돌아온 에리크는 그린란드 탐험대를 결성하여 현재의 율리아너호브 부근의 이스트 정착지와 고드타프 부근의 웨스트 정착지를 개발했다. 이들 정착지에 최고 3,000명에 이르는 주민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뒤늦게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노르웨이에서 갓 돌아온 레이브 에릭손을 통해 11세기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었으며, 1125년에는 그린란드에 대주교 관구가 세워졌다.

13세기부터 노르웨이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1100년경 그린란드 북부에 나타난 에스키모의 툴레 문화와 교류를 갖기 시작했다. 13세기에 노르웨이인들의 웨스트 정착지가 이따금 없어지기도 했으며, 약 150년 뒤에는 이스트 정착지가 없어졌다. 이러한 정착지들이 없어진 것은 일부 에스키모 툴레인들 때문이기도 했으나 대체로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16세기 후반부터 고래잡이와 북서항로 개발로 그린란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고래잡이 어부들이 들어와 인종간에 피가 섞이게 되어 지금의 독특한 그린란드인들이 생기게 되었다.

1261년부터 노르웨이(이후에는 덴마크-노르웨이 연합국)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인들의 본래의 정착지들이 없어진 뒤, 식민지 개혁 시도가 전혀 없다가 1721년에 비로소 덴마크의 허락을 받고 한스 에게데가 지금의 고드타프 부근에 무역회관 겸 루터교 선교회를 세웠는데, 이때부터 실제로 그린란드의 식민시대가 시작되었다. 1776년 덴마크가 왕립 그린란드 무역부를 설치함으로써 교역을 완전히 독점하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그린란드 해안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다가 1950년에 비로소 다시 개방되었다.

1940∼45년 나치가 덴마크를 점령했을 때 그린란드는 미국의 보호하에 있었으나 1945년 다시 덴마크가 돌려받았다. 전쟁 후 덴마크는 그린란드인들이 제기한 혹독한 비난에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역경제와 운송체계 및 교육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사업을 실시했다. 1953년 그린란드는 완전히 덴마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979년에 비로소 완전한 지방자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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