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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임실/임실군 자료

봉황대

by 임실사랑 2011. 9. 13.

 

 

 

 

 

 

 

 

 

유물명

임실 이도리 봉황대석문

한자명

任實 二道里 鳳凰臺石文

소재지

임실읍 이도리 776

유적분류

유적 예술관련유적 역사시대예술

시대

일제강점기

유적개요/참고문헌

임실읍 소재지 부근 동중학교 뒤편 봉황대에 위치하고 있다. 봉황대 석문의 크기는 156×39×39cm로 좌대 위에 비를 세운 형태로 전면에는 설송 최규상이 전서로 鳳凰臺라고  썼으며, 뒤에는 해주인 오해건이 글을 지었다.  봉황대에 있는 공덕비는 원래 임실 천변에 있었으나 이곳으로 옮겨진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봉황대의 석문이 1935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 그 후의 일로 추정된다. 현재 충혼탑 뒤편에는 6기의 송덕비가 있고, 비신 없이 기단부만 있는 것이 9기가 있다.

 

 

 

 

반공투사 순국유적비

 

 

현감 유희진 선정비

유희진 선정비는 보주와 연화문양을 올린 비석아래 돌좌대를 받친 형태이며 비석의 크기는 100×53×15cm이다. 비의 전면에는 縣監柳侯希津善政碑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1588(선조 21)년 건립된 오래된 비석이다. 유희진은 1583년(선조 16)부터 1588년(선조 21)까지 임실현감으로 재임하였다.

 

현감 김천일 선정비

김천일 선정비의 비석 크기는 120×49×15cm으로 전면에는 縣監金候千鎰善政碑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음기에는 萬曆 10년(1582) 3월에 비를 세우고 숭정기원후 70년 정축(1697) 4월에 改鍊하였다고 밝혀 놓았다. 김천일은 1578년(선조 11) 5월부터 1581년(선조 14)까지 임실현감으로 재직하였다.

 

 

군수 오응선거사비

오웅선 거사비의 크기는 142×53×22cm으로 전면에는 郡守吳公應善去思碑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음기에는 계묘 2월 이라고 쓰여 있어 1903년에 비석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吳應善은 본관이 해주인으로 임실에서 1897년 5월부터 1899년 4월까지 근무했는데 이후 흥덕군수로 옮긴 후에 비를 세운 것이다.

 

현감 서호순 선정비

서호순 선정비의 크기는 121×53×18cm으로 전면에는 縣監徐侯護淳淸德善政不忘碑라고 기록되어 있고 음기에는 숭정기원후사술신(1848년)2월이라고 되어 있다. 서호순은 1843년(헌종 13) 6월에 부임하여 동년 11월까지 임실현감으로 재직하였다.

 

관찰사 이서구 선정비

이서구 선정비의 크기는 159×60×22cm로 좌대 위에 세운 형태로 전면에는 觀察使李相公書九善政不忘碑라고 기록되어 있고, 음기에는 숭정기원후사정해(1827) 11월일이라고 되어 있다. 이서구는 1793년(정조 17) 8월부터 1795년(정조 19) 3월까지 전라도 관찰사로 재직하였다. 이후 1820년   10월부터 22년 2월경까지 또 한차례 전라감사를 역임하였다.

 

현감 김중집선정비

김중집 선정비의 크기는 145×51×21cm으로 전면에는 縣監金侯中集淸德善政永世不忘碑라고 기록되어 있고 음기에는 숭정기원후사정사(1857)오월 이라고 되어 있다. 김중집은 1855년(철종 6) 9월부터 다음해 7월까지 임실현감으로 재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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