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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임실/임실군 자료

지방기념물 100호 성미산성

by 임실사랑 2007. 8. 20.

 

지방기념물 100호 성미산성 [城嵋山城]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덕촌리에 있는 산성(山城).

지정번호   전북기념물 제100호
지정연도   1999년 4월 23일
소재지   전북 임실군 관촌면 덕촌리 산15
시대   삼국시대
크기   둘레 약 518m
분류   성지(성곽)

 연 혁

임실 성미산성은 신라와 백제가 대립하고 있던 6~7세기에 걸쳐 소백산맥을 국경으로 하는 주 저항선과 진안.임실.남원을 잇는 후의 전라좌도 연변을 따라 제2의 방어선 성격을 띠고 있으며, 백제 본기 무왕 605년 2월에 각산성을 축성하였다고 하며, 신라 본기에는 태종무열왕 661년에 두량이성과 정읍 태인에서 백제군에 패한 후 2000여급을 배었다는 기록이 있음.

성미산(430m)의 정상을 안고 남쪽 사면(斜面)을 축성한 좁은 정삼각형으로 둘레가 517.5m나 된다. 이처럼 성미산성을 중심으로 대리산성(신령면 대리),방현리산성(관촌면 방현리) 이 좁은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달리 유래가 없는 것으로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현장인 것이다. 임실 성미산성 안에서는 승석문 토기편등이 출토되었으며, 우물터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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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3일 전라북도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되었다. 조기홍 외 3명이 소유·관리한다. 《삼국사기》〈백제 본기〉에 무왕() 6년(605) 2월에 축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미산(430m)을 중심으로 좁은 정삼각형 형태로 축성하였으며, 둘레는 약 518m이다.

신라와 백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6~7세기에
소백산맥을 경계로 하는 주 저항선에 대해 진안·임실·남원을 잇는 제2방어선 성격을 가진다. 〈신라 본기〉에는 이곳에서 태종무열왕() 8년(661) 두량이성과 정읍 태인에서 백제군 2,000명의 목을 베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성미산성 주위에는 대리산성(신령면 대리), 방현리산성(
관촌면 방현리)이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6~7세기에 걸쳐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임을 알 수 있고,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장소이다. 우물터가 발견되었으며, 토기 파편들도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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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실 성미산성은 1965년에 전영래박사에 의해 조사되었다. 사선대로 뻗어내린 높이 433m의 [배뫼산]이니 배뫼는 [뿔뫼] 곧 角山 인 셈이다.(성미란 성이 있는 산을 말한다고 본다.

나주 자미산성(=성산산성)과 정읍시 옹동면 산성산성이 다 같은 이름이다)성미산 정박이에 서면한 세모꼴의 산성이 완연히 남아 있다. 각산성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무왕 6년 3월에 각산성을 쌓았는데, 8월에는 신라가 동쪽 변방에 침입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이 산성은 백제시대의 갈령도인 고부- 태인- 임실- 진안- 장수-거창- 고령을 잇는 선상에 위치한다.

이는 현 소백산맥(?) 육십령고개를 넘는 횡단코스이다. 동국여지승람 정읍. 산천조에 의하면 노령산맥을 [葦嶺]이라고도 적고 혹은 [蘆嶺]으로도 적는다 했는데 모두 [갈. 재]의 새김글자를 빌린 것이다. 이에 반하여[葛嶺]의 갈은 소리 글자를 적은 것이다.

태인천을 넘어온 신라군은 이 갈재의 등줄기를 넘어 섬진강 상류인 오원천 곧 운암천을 따라 진안방면으로 물러가다가 각산전투를 만났다. 이때 백제의 군사 2천이 희생되었다. 이곧은 지금의 임실군 관촌면 오원천 양켠 기슭에 뿔처럼 솟아있는 요새지의 성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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